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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년전
사이공
법과
대학
시절(22세)의
'뚜익'
이명우
대위가
처음
만나서
찍어준
칼라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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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이공
법과
대학생
뚜익
1972년
뚜익은
사이공대학
법과
야간대학
2학년에
재학
중이고
어머님은
돌아가시고
월남군
장교로
있는
오빠와
언니
1살짜리
조카
아버지가
동나이성
작은
마을에
살고있다고
했다.
낮이면
투익은
동나이
디안면에
있는
비둘기부대
내
PX
선물
코너에서
아르바이트로
일하고
밤이면
오토바이로
사이공
대학
법과대학에
다니고
있다.
비둘기부대
PX
선물코너에서
일을
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국말을
배우게
된단다.
3번째
월남
전에
파병된
이명우
대위는
아직
보직을
못받고
쩔렁에
있는
주월사
장교
숙소에서
대기
하던중
1972년
주월
사령부
민사심리전
부대
비둘기부대
파견대장으로
발령
받는다.
민사심리전대
비둘기
부대
파견대장으로
근무
하게된
이명우
대위와
뚜익은
비둘기부대에서
다시만나서
자연스럽게
서로가
사랑을
나누게된다.
부대원들이
알세라
조심스럽게
일요이면
사이공시내와
담샘
공원
에서
데이트를
즐기고
뚜익
집에
가서
부모님에게
인사를
하고
장래
까지
약속한게된다.
이명우대위
마지막
월남에서
철수
1973년
3월20일
한국군을
태우고
갈
미군
군용기가
롱빈
보급창
기지에
대기
중이다.
이명우
대위는
주월사
마지막
철군요원으로
비둘기부대에서
뚜익과
작별인사를
했다.
뚜익은
오토바이로
롱빈
기지창
까지
군용차량을
따라와서
이대위와
마지막
작별
인사을
한다.
[몇년이
되어도
기다리겠습니다.
사랑
합니다.
꼭
돌아오세요.]
[알았소
한국에
돌아
가서
전역을
하고
찾아오겠소.
전쟁도
곳
끝날
것이요.]
군용기가
롱빈기지
할주로를
요란한
괭음을
울리며
하늘로
날아간다.
뚜익은
군용기가
지평선으로
사라질
때까지
눈물을
흐르며
배웅했다.
73년
이명우
대위는
한국에
도착하여
육군
본부에
전역신청을
하게된다.
전역을
기다려도
육군본부에서는
특수요원으로
3번이나
월남전선에
파병됐던
장교라고
전역을
시켜주지
않았다.
1974년
베트남
전쟁은
중부지방까지
월맹군에
함락되고
전세가
무척
불리
하다는
소식이다.
74년
다시
전역
신청을
하여
전역을
하고
미국으로
떠난다.
뚜익은
미국에서
자리잡으면
연락할
생각이다.
미국
시애틀에
도착한
이명우
씨는
태권도
9단의
실력으로
시애틀
에서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며
성공하게된다.
1975년
월남은
월맹군에게
완전
함락되고
투익과
영원히
이별
하게된다.
태권도
도장을
운영하면서
월남출신
제자들도
많이
생겨서
15년전부터
월남출신
제자들을
사이공으로
보내서
뚜익을
찾아
보았지만
찾지를
못하게된다.
뚜익을
찾아나서다
메일로
받은
35년전
사진한장
달랑들고
3일동안
호치민시내와
동나이
지역
빈증지역
수소문하고
돌아다녔지만
허탕만
치고
마지막으로
디안지역을
찾아가서
수소문하던중
드디어
현지인
할머니가
아는
사람같다고
알려준다.
할머니의
도움으로
뚜익을
극적으로
찾을수
있었다.
뚜익을
찾아
만나보니
이명우
씨와는
첫사랑을
한
남자며
지금도
무척보고
싶다고한다.
'그렇게
오랜세월
기다렸는데
이제야
만나게
되는군요.
고맙습니다.
고맙습니다'
라고
한다.
첫사랑의
한국군
대위가
다시
베트남으로
자신을
찾아올
희망을
갖고
꼬박
10년을
기다렸으나
찾아
오지
않아서
34세가
되는해에
베트남
남자와
결혼을
해
22세된
딸을
두고있고,
결혼한
베트남
남자는
15년전에
행방불명
되었다고
한다.
1975년
베트남이
북으로
통일되면서
베트남군
장교인
오빠는
전사하고
같이살던
언니도
어린
조카만
놔두고
세상을
떠나
77년부터
어린조카
딸을
친딸처럼
돌보며
결혼시켜서
지금도
같이
살고
있다.
오빠가
월남군
장교이고
'투익'역시
한국군
부대에
근무경력
때문에
직장도
잡을수
없었고
목슴만
연명할수
있는
배급으로
살아가면서
배고품으로
많은
고생을
했다고
한다.
베트남이
도이모이
정책으로
한국과
베트남이
수교를
하고
한국공장들이
베트남으로
들어오면서
한국말
통역을
구한다는
광고를
보고
한국공장
에
이력서를
제출하고
한국공장에서
통역관으로
2005년까지
10년동안
근무하게
된다.
몸이
아파서
3년전부터
회사를
그만두고
집에서
쉬고있는
중이라고
한다.
몇
년째
몸이
아파
직장도
없이
고생을
하면서
나에게
한국말
통역자리를
소개시켜
달라고
한다.
미국
이명우씨에게
뚜익을
찾았다고
연락하고
현재
직장도
없이
여자혼자
가장으로
어렵게
살고있다고
전해준다.
[뚜익은
한국말을
아주
잘
합니다.
전화
해보세요.]
이명우씨에게
뚜익
전화
번호를
알려줬더니
고맙다며
호치민에
빠른
시일에
오겠다
고
한다.
이명우씨의
감사
메일
이
사장님께
보
내주신
e-mail과
사진
잘
받았습니다.
정말
수고
하셨읍니다.
감사합니다.
그렇게
쉽게
찾을줄
몰랐읍니다.
역시
실력이
대단
하십니다.
뚜익
하고
한시간
이상
통화했읍니다.
무어라고
표현할수
없는
감격의
순간
이었습니다.
보내주신
사진을
보니
35년
이라는
세월이
너무나
많은
것
들을
변화
시켰음을
실감케
하는군요.
다음달
11월
20일
쯤
한국에
들렸다가
베드남을
방문
할
예정입니다.
이사장님을
만날
생각하니
기대가
되는군요.
제
e-mail
주소가
변경
되었으니
참고
하시기
바랍니다.
-미국에서
이명우
전우
드림-
이명우씨는
하루에
한번씩
뚜익과
전화
통화을
하면서
22세
딸아이가
대학교
2학년이고
현제
뚜익이
몸이
아프다는
소식을
듣고
투익씨
딸
학비와
병원비에
보태
쓰라며
usd
5.000
송금
해주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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