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남전 해외근무수당, 다른 참전국과 동일및전투수당 지급근거-(펌)
월남전 해외근무수당, 다른 참전국과 동일
안치용의 시크릿 오브 코리아(Secret of Korea)월남전 해외근무수당, 다른 참전국과 동일 / ![]() 베트남전 참전 한국군이 미국한테서 수당 적게 받았다는 의혹은 거짓이었다
미 국방부 보고서 수록한 의회 청문회 회의록 전 12권 모두 입수 미상원 사이밍턴 위원회, 한국뿐 아니라 월남참전 13개국 현황 상세 조사 ‘소위(少尉) 3분의 1 값에 팔렸다’는 주장은 사실무근…미, 3개국 동일액수 지원 확인 한국군 해외근무수당, 필리핀보다 많고 태국보다 적어…3개국 큰 차이는 없어 정부가 진작 사이밍턴 회의록 입수했다면 헐값파병 의혹은 조기에 해소할 수 있었다 오는 29일은 미국이 월남(베트남)에서 완전히 철수한 지 49년이 되는 날입니다. 한국도 이날 대사관과 교민들이 철수했습니다. 월남 철수 49년과 오바마대통령 방한 등을 맞아 미 국방부 보고서를 수록한 사이밍턴청문회 회의록을 입수, 그동안 끊임없이 의혹이 제기됐던 월남전 해외근무수당의 실체를 짚어봅니다 사이밍턴청문회 회의록 중 한국관련 1권과 국방부 문서 등을 통해 해외근무수당 관련 의혹을 부인해왔으나 이번에 사이밍턴청문회 회의록 12권 전권을 입수·확인한 결과 한국 참전군인들은 필리핀과 태국 참전군인과 대등한 대우를 받았던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확인 결과 미 연방상원 외교위원회 산하 ‘안보협정 및 해외공약 소위원회’는 1969년 9월 30일부터 1970년 11월 24일까지 1년 2개월에 걸쳐 월남전에 참전한 미 동맹군 13개국 지원현황 등을 샅샅이 조사하고 2400여페이지 분량의 회의록 12권을 남겼으나 그동안 한국 정부는 한국군 관련 회의록 1권, 그나마 원본이 아닌 번역본 1권만 확보, 다른 나라에 대한 미국의 지원상황을 명쾌히 밝히지 못함으로써 헐값파병 의혹을 키운 셈입니다. 월남전에 대한 조사를 했던 이 위원회의 청문회는 위원장이 스튜어트 사이밍턴 의원이었기 때문에 ‘사이밍턴청문회’로 불리고 있으며, 그 회의록은 월남 참전국 13개국에 대한 미국의 지원 등에 대한 증언과 함께 미 국방부가 제출한 지원보고서 등 상세한 증거를 담고 있습니다.
한국군관련 회의록[사이밍턴회의록 6권] 1572페이지, 사이밍턴청문회 필리핀군관련 회의록[사이밍턴회의록 1권]265페이지, 사이밍턴청문회 태국군관련 회의록[사이밍턴회의록 3권] 842페이지에 수록돼 있었습니다.
태국보다는 약간 적게 받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미국은 참전국 군인들에 대한 해외근무수당을 참전국 자국에서 지급하는 월급수준에 준해서 책정했습니다. 당시 한국 사병들은 필리핀·태국보다 월급수준이 현저히 낮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해외근무수당은 상대적으로 많이 지급받은 것으로 밝혀졌습니다. 그동안 한국 일각에선 ‘정부가 필리핀이나 태국의 3분의 1에 불과한 돈을 받고 젊은이들을 베트남으로 보냈다’는의혹이 제기돼왔습니다. 한국군 소위(少尉)의 해외근무수당은 151.55달러 필리핀군 소위는 441.92달러, 태국군 소위는 389.33달러라는 주장이었습니다. 그러나 위의 회의록은 이 의혹이 전혀 사실이 아님을 입증하고 있습니다. 미 국방부는 사이밍턴청문회에서 미국이 소위에게 지급한 해외근무수당은 한국군과 필리핀군 및 태국군 모두 매월 120달러로, 3개국 소위에게 똑같은 액수를 지급했다며 관련 근거 등을 제시했습니다. 한국 정부가 지급하던 소위 월급은 1967년 34달러, 1969년 47달러였으며 필리핀 정부가 지급한 소위 월급은 90달러, 태국 정부가 지급한 소위 월급은 50달러로 기록돼 있습니다. 즉 필리핀 소위의 월급은 한국의 2.6배였지만 미국이 한국군 소위에게 지급한 해외근무수당은 월 120달러로 필리핀 등 다른 나라와 차이가 없었습니다.
소령 이상은 한국과 필리핀은 동일했고 태국군은 계급이 올라갈수록 최소 10%, 장군급에서는 30%정도 많았으나 그 대상 인원은 1~2명에 불과할 정도로 극소수였습니다.
이병에 대한 해외근무수당은 한국군이 월 37.5달러인 반면 필리핀군은 33달러, 태국군은 39달러였고 일병은 한국군 40.5달러, 태국군 45달러, 상병은 한국군이 45달러, 필리핀군이 36달러, 태국군이 50달러로 밝혀졌습니다. 한국 정부가 지급했던 이병 월급은 1967년 1달러, 1969년 1.6달러인 반면 필리핀은 30배에서 40배에 달하는 43달러였고 태국군은 20배가 넘는 26달러로 나타났습니다. 이 회의록에 따르면 미국은 각국 정부와 월남전 참전관련 협정을 맺으면서 해외근무수당과 전사자 및 전상자에 대한 보상은 미국이 부담하되 기타 수당이나 부상 등은 모두 자국 정부가 부담하고 미국이 이에 대한 보전을 하지 않는다’라는 표현을 명기했습니다. 즉 미국이 참전국에 지원한 비용은 해외근무수당과 전사상자보상금이며 나머지는 참전국의 자체 부담이었습니다. 또 1964년 처음 월남에 파병된 소수의 한국군에 대해서는 미국의 비용부담이 없었다고 명시돼 있어, 한국 정부가 1964년 수당을 지급했다’는 한국 국방부 주장도 사실로 확인됐습니다. 참전국 자국의 봉급 수준에 준해서 해외근무수당을 지급한다는 미 국방부의 원칙을 감안하면 미국은 한국군에 대해 다른 참전국과 동일한 수당을 지급함으로써 한국군을 오히려 우대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동안 끊임없는 논란이 됐던 월남전 헐값파병 의혹은 이렇게 명확히 입증될 수 있는데도 한국 정부가 초기에 명쾌한 해명을 하지 못함으로써 의혹을 증폭시킨 측면도 간과할 수 없습니다. 2004년 11월 30일 한국 국방부는 고엽제전우회의 의혹 제기에 대한 답변 공문에서 ‘기타 연합군에게 지급된 관련자료’ 즉 미국이 한국 외에 다른 월남전 참전동맹국에게 지급한 해외근무수당과 관련한 자료는 ‘보유한 것 없음’이라고 답했습니다. 즉 미국이 다른 참전국에 지원한 현황에 대해서는 모르겠다고 답함으로써 헐값수당 의혹을 부풀리는 계기가 됐던 것입니다. 또 이 공문에서 언급한 객관적 자료는 ‘사이밍턴청문회의 청문록’이 유일했으며 그나마 그 원문보고서를 입수하지 못하고 국회도서관 입법조사국이 1971년 10월 25일 간행한 ‘전후 미국의 대한정책’, 즉 사이밍턴회의록의 번역본만을 제시했습니다. 이 문서의 정식 명칭은 입법참고자료 제140호 ‘전후 미국의 대한정책’ (부제 사이밍턴위원회 청문록)으로 419페이지 분량입니다. 사이밍턴위원회가 13개 참전국가를 대상으로 무려 1년 이상 청문회를 진행하면서 미 국방부 보고서까지 첨부, 2400여 페이지 분량의 12권 보고서를 발간했음에도 불구하고 우리 정부는 전체 원문보고서는 물론이고 한국 원문보고서조차 제시하지 못한 것입니다. 한국 국방부는 2005년 8월 월남전 참전 용사들에 대한 해외근무수당은 다른 참전국과 대등한 수준으로 정상적으로 지급됐고 매달 주한미군사고문단이 이를 결산했기 때문에 한국 정부가 전용할 여지가 없다고 밝혔습니다. 또 같은해 12월에도 수천페이지의 한국군 내부문서를 추가 공개하며 태국군과 필리핀군에 지급한 해외근무수당이 한국군과 동일하게 지급됐다고 밝혔지만 태국군과 필리핀군 해외근무수당의 객관적 관련 근거, 예턴대 미국 측 지급내역 등을 제시하지는 못했습니다. 현재까지 국방부가 제시한 미국 측 문건은 ‘국회도서관 입법조사국 1971년 간행물 ‘전후 미국의 대한정책’, 즉 사이밍턴청문회 한국회의록 번역본과 ‘베트남전에의 동맹국 참전’이 유일합니다. 한국 국방부는 ‘베트남전에의 동맹국 참전’ 문건을 미 육군성이 1985년 발행한 책자라고 밝혔습니다만 사실은 미 육군성이 1975년 첫 출간한 뒤 1985년 동일한 내용으로 재출간한 200페이지 분량의 책자입니다. 이 책자에는 각 참전국 별 해외근무수당은 구체적으로 명기돼 있지 않습니다. 이 보고서 57페이지에 계급별 해외근무수당만이 개략적으로 언급돼 있을 뿐입니다. ▲ 베트남전 당시 김성은 국방장관이 파월 장변의 해외 근무 수당을 협의하기 위해 비치 주한 미군사령관에게 보낸 서한일부.
전투수당 지급근거
한국군의 월남전 참전은 미국의 요청과 당시 한국내의 정치, 경제, 군사 등의 제반 요인이 결합되어 이루어진 것으로 볼수 있다. 1964년 미국의 존슨 대통령이 월남에서의 전황이 예상외로 어렵게 되자 한국을 포함하여 25개 자유우방국에 월남전 지원요청 서한을 보낸 것이다. 당시 5.16 혁명후 박정희 정부가 미국과의 관계개선과 경제 및 군사원조가 절실했던 시기로 과거 한국동란시 연합국에 진 빚에 대한 명분 이 아니더라도 미국의 동남아 전략속에서 양국의 이해관계가 맞아 떨어진 것이다. 한국군의 월남전 파병으로 경제발전의 획기적인 계기를 마련하게 된 것이다. 만일 미국의 월남전 참전요청을 거부 했다면 주한 미군 2개사단이 월남전에 투입 될 것임으로 한국방어의 공백은 물론 한.미동맹의 심각한 타격을 주었을 것이다. • ▣ 한국경제 기사회생의 돌파구 1962년부터 의욕적으로 시작한 제1차 경제개발 5개년 계획은 출발부터 자금란으로 적자가 누적되어 1963년 수출 8.600만$에 경상수지 적자는 무려 2억 4000$ 이었다. 이 시기에 한국경제 기사회생의 돌파구로 작용한 것이 월남전 파병이었다. 한.미동맹의 결속과 경제 및 군사원조 등 난제들이 한꺼번에 해결 할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다. 더욱이 1966년 월남전 확전으로 미국이 한국군 전투사단 증파를 요청 해 옴으로써 또한번 우리 정부의 실리를 최대한 반영한 브라운각서에 의한 합의사항을 문서로 받아 내는 성과를 이룩했다. 브라운각서란? 1966년 3월 미국정부가 한국군 전투사단의 월남 추가파병을 요구 해 옴으로서 우리정부가 그 전제조건으로 요구한 양해사항을 당시 브라운 주한 미 대사를 통해 한국정부에 전달한 미국정부의 공식문서다. 한국은 1964년 비전투부대 파병에 이어 1965년 10월 국군 맹호사단 본대를 월남에 파견 했으나 월남정부는 전세가 불리 해 지자 미국을 통해 추가로 전투사단 파병을 요청 하였다. 이에 박정희 정부는 추가 파병에 따르는 국가안보에 대한 담보와 경제원조 및 미군 수준의 참전수당 등 선행조건을 미국정부에 제시했고 미국은 이에 대한 보장과 약속을 각서형식으로 다음과 같이 통고 해온 것이다. 군사원조 1. 한국군의 현대화를 위해 수년동안 상당량의 장비를 제공한다. 2. 베트남 추가 파병에 따른 소요경비와 병력에 필요한 무기와 장비를 제공한다. 3. 한국에서 추가병력 훈련 및 소요재정을 부담한다. 4. 한국군의 대간첩 활동을 위한 필요한 요구가 있을시 이를 지원한다. 5. 한국군의 탄약소요 증가에 따른 병기창 확장시설을 지원한다. 6. 베트남 주둔부대와 서울, 사이공 정부와의 통신망을 확충한다. 7. 한국군 작전을 위해 C-54 대형 수송기 4대를 지원한다. 8. 한국군의 막사,취사,오락실 등 부대 복지시설 개선을 위해 잉여물자를 제공한다. 9. 한국군 처우개선을 위해 1966. 3. 4일 비치 유엔군 사령관과 김성은 국방장관이 합의한 비율에 따라 미국이 한국군의 해외참전수당을 부담한다. 10. 전,사상자는 한.미합동군사위서 합의한 액수의 2배를 보상금으로 지급한다. 경제원조 1. 한국군 1개 사단과 1개 예비여단 편성에 소요되는 예산을 방출한다. 2. 한국군 파월 기간중 군원이관을 중지한다. 3. 파월 한국군에 필요한 보급물자, 용역 등 을 한국에서 발주한다. 4. 한국의 수출진흥을 위해 기술협력을 강화한다. 5. 현재 지원중인 1억 5천만$ AID차관외 한국의 경제발전을 돕기위해 추가로 1억 5천만$을 제공한다. 6. 베트남 수출지원을 위해 1천5백만$의 프로그램을 제공한다. ▣ 문제점 제기 2005년 외교통상부가 월남전 비밀문서를 30년만에 공개했으며 국방부도 당시 파월장병들에게 지급한 해외근무수당 내역을 사실대로 밝혔다. 그러나 1965년 전투사단인 맹호부대 추가파병을 조건으로 정부가 호주,태국,카나다 등 다른 참전연합국 군인과 동일한 수준의 전투수당을 요구한 자료와 당시 김성은 국방장관과 드와이트 비치 유엔군 사령관 사이에 합의했다는 영문원안은 지금까지도 제시하지 못하고 있다. 1)해외근무수당과 전투수당은 다르다 가. 박정희 정부는 1965년~1973년까지 8년동안 한국군 약32만 여명을 월남전에 파병하면서 미국으로부터 지원받은 해외근무수당을 대통령령 제1895호 규정에 의거 아래와 같이 지급 했다. ( 1968년도 환율 : 1$=272,55원 ) 일병 : 40.5 | 상병 : 45 | 병장 : 54 | 하사 : 57 | 중사 : 60 | 상사 : 75 | 준위 : 105 | 소위 : 120 | 중위 : 135 | 대위 : 150 | 소령 : 165 | 중령 : 180 | 대령 : 195 | 준장 : 210 | 소장 : 240 |중장 : 300| 나. 1975년 종전후 국내는 물론 미주 등에 거주하는 파월 장병들이 월남전 당시 해외참전수당(근무+전투)이 미군 및 연합국이었던 호주나 필립핀, 태국군에 비해 20%수준 이었음을 지적하고 정부에 진상조사 청원서를 내자 2005년 5월 국방부가 몇가지 근거를 들어 파월장병 수당은 적법하게 지불됐다는 발표를 했다. 그러나 공개한 내용은 해외근무수당과 전투수당에 대한 부분이 명확하지 않았으며 당시 협상의 주인공이었던 박정희 대통령과 김성은 국방장관이 작고 함으로서 전투수당에 대한 의혹은 미궁에 빠진 상태다. 브라운각서 제9항(한국군 파월장병 대우)에 비취 유엔군사령관과 김성은 국방부장관과 합의 했다는 계급별 해외근무수당에 대한 지급세항 영문원안이 없는 상태(은닉 또는 파기추정)에서 당시 대통령령으로 지급된 위 해외근무수당이 마치 해외근무수당+전투수당으로 잘못 이해하고 있음. 한국군의 베트남참전에 관한 <국방정책연구> 자료에서 서울대 박태균 교수는 월남파병 군인들의 월급 및 수당은 얼마를 받았는지 의혹만 남아 있다고 했다. 또한 다른 국방부 자료를 보면 한국군의 월급과 전투수당 등이 미국과 호주, 카나다, 뉴질랜드 등 다른 참전국과 비교 할때 크게 차이가날 수 없다며 전쟁터에서 목숨바처 피를 흘린 대가성 문제는 참전명분에 타격을 줄수 있음으로 지금까지 하나의 신화로 묻혀가고 있는 것이라고 논평했다. 2) 전투수당 지급 근거 및 자료 군인보수법 국방부제정 법률 제1338호(1963.5.1) 제17조(전투근무수당)에 의하면 전시, 사변, 국가비상사태시 등 전투에 종사하는 자에 대하여는 국가가 각령이 정하는 바에따라 전투수당을 지급한다로 되어있다. 1964년 최초 이동외과병원 및 비들기부대 등 비전투 부대원들에게는 해외근무수당을 지급한 것은 맞다. 그러나 1965년 맹호부대 증파부터 는 실제로 전시작전에 의한 전투대원으로 참전하였음으로 전투수당 지급근거는 명확하다. 1975년 미.육군성이 발간한<월남참전 동맹국에 대한 연구>논문 P-155를 보면 1965년 6월23일 김성은 국방장관이 증파에 따른 국회동의를 앞두고 주한 유엔군사령관 비치장군에게 파병조건으로 제시한 10개항 중 8항에 의하면, ( Provision of financial suport to Korean units and individual in Vietnam, including combat duty pay at the same rate as paid to US personnel.---) 註) 파병되는 한국군 장병들에게 미군에 지불되는 동일수준의 전투수당을 지불 하기로 하고 전상자의 보상금과 현지 월남 고용인의 급료도 미국이 지불한다. 로 되어있다. 위와같은 근거자료로 보아 최종적으로 합의 할시 조정 되었음을 감안한다 하더라도 연합군의 20%수준은 턱없이 적은 액수로 박정희=김성은, 비치장군=김성은 장관 사이에 이면계약을 했을 가능성을 배제하기는 어렵다 박정희 영도력<베트남 파병과 한국과학기술>책자에도 월남파병장병의 해외근무수당 가운데 일부가 이면계약을 통해 전용됐다는 의혹이 있다고 했다. 3) 전투수당 증언과 천문학적 자산 2012년 4월 18일 한국군 2대 주월사령관이 었던 이세호 대장(예)은 서초동 전자랜지 강당에서 있은 안보강연에서 월남파병 해외근무수당에 대해서 언급 하면서 정부가 미국측으로부터 병장기준 500$을 받아서 1/10인 50$만 지급하고 나머지는 국고에 귀속하여 경부고속도로 건설 등 국가기간산업 확충을 위해 썼다고 했다. 경부고속도로 건설은 박정희희 대통령이 서독을 방문 아우토반 고속도로를 보고 1968년 2월 착공하여 1970년 7월, 2년 5개월만에 완공한 우리나라 최대역사로 그동안 국가 기간산업 발전에 크게 공헌하였음은 아무도 부인하지 않는다. 문제는 공사비 430억으로 월남파병 대가로 받은 미국의 원조, 그리고 월남특수 및 파월장병 전투수당 유입으로 충당했다.<국토연구원>자료에 의하면 현재 경부고속도로의 국가경제적 시너지효과는 연간 13조 5천억으로 평가 된다고 한다. 한편 1964년~1973년까지 약 8년동안 월남전에 한국군을 파병함으로서 얻은 ①미국의 군사원조는 약 17억$로 한국의 국방비 지출을 경감케 하였고 ②월남수출확대 급증과 ③물자수송 및 용역 등 전쟁특수로 12억 ④국내기업과 근로자의 월남진출에 따른 효과 등을 계산할 경우 총 외화수입은 대략 50억$로 추정했다. 당시 이 액수(5조)는 5천년 역사상 월남전 참전으로 얻은 천문학적 자산이라고 했다 <채명신사령관 회고록> ▣ 결 론 지난해 5월21일 국회의원회관 대강당에서 대한민국 월남참전자회와 사)파월전사연구소에서 공동주최한 “월남참전 유공자의 공훈과 예우”에 관한 세미나에서 유영옥 경기대교수와 제성호 중앙대교수 등은 월남참전유공자와 타 유공자와의 형평성 문제를 지적했고 법무법인“주원”의 고정욱 변호사는 참전군인들의 전투수당요구는 정당한 권리라며 국가를 상대로 소송을 준비 하겠다고 했으며 현재“월남참전권익포럼”주관으로 공청회 및 전국적인 서명작업을 준비하고 있다. 결론적으로 월남전 파병으로 인한 국익증진에 대한 올바른 평가가 재조명돼야 함은 물론 이들의 희생에 대한 합당한 예우를 할수있는 특별법 제정 등 사회적 분위기 조성이 시급히 이뤄져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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