워커 將軍의 最後
韓國을 위기에서 구해준 워커 將軍 !
그는 1950,12,23日,
서울 北쪽 의정부의 美軍部隊를 방문하는 길에
아들, <샘 워커> 중위에게 은성훈장을
직접 수여하기 위하여 얼어붙은 도로를
맹속도로 달리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워커 中將의 뒤에서 따라오던
韓國軍 트럭이 그 차를 추월하려다가
추돌하게 되어
그만 추돌과 동시에 將軍의 지프가 딩굴면서
보좌관과 운전병은 튕겨나와 살았지만
워커 將軍은 그 자리에서 즉사하고 만다.
이승만 大統領은 이 소식을 전해 듣자,
사고를 낸 韓國軍 운전병을
즉각 처형하도록 지시했다.
그러나 옆에 있던 美 군사고문관
짐.하우스맨 대위의 만류로 운전병은
3年 징역형을 받게되었다.
이 짐.하우스맨은 회고록에서
이런 뼈아픈 지적들을 했다.
* <하버드의 고풍어린 교내 예배당 벽에는
韓國戰에 나가 목숨을 바친 20 餘名의
하버드생 병사들 이름이 동판으로 새겨져 있다.>
*<美國은 한 도시에서 한 사람이 나올가 말가 한
美國의 希望 들을 韓國의 自由를 지키기 위해
내보냈다.>
*<韓國에서도 많은 학도병들이 전사했지만
韓國의 어느 학교에서도 전사 학도병들의
이름이 새겨져 지나가는 자들의
머리를 숙이게 하는 표지는 한 군데도 없다.>
*<그리고 생명을 던져 진지를 지켜낸
병사들의 얘기는 입으로만 전해질 뿐
그들을 기릴 수 있는 흔적은 어디에도 없다.>
*<한국은 전후 팔을 잃은 國會議員,
눈이 날아간 國防長官을 한명도 갖지 못했다.>
*<행사장이나 연회장 같은 데서
한국전의 전상자들을 만나본 적도 없다.>
美國이 우리의 血盟이란 말은
전에 들어본 얘기이며,
우리를 구해준 워커 將軍이 어떤 사람인지는
더 더욱 알지 못하고,
맥아더 원수의 동상을
무너뜨릴려는 자들이 득실거리고,
6,25는 김일성의 통일전쟁이라는 사람들이
활개를 치는 세상에서 우리는 살아가고 있다.
將軍이 순직한 후 한국정부는 美軍들의 휴양을 위하여
호텔을 건립하고,그를 기리기 위하여
호텔명을 '워커힐 호텔'이라 이름하였으나
정작 그의 공적을 알고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 때늦은 감은 있지만, 그의 순직 55주기를 맞아
韓.美同盟親善會에서 5억여원의 기금을 마련하여
승전지(勝戰地) 大邱에 그의 동상이 세워진다니
참으로 多幸한 일이라 생각하면서.
한국전 참전군 전쟁기념관 참전기념
비석건립 을 보면서
기쁜마음으로 이 글을 올렸습니다.
< 펌 글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