빨간명찰 Viet nam veterans

[스크랩] [인터뷰]참전 노병의 분노-"참전용사 홀대 이래도 되나?"

마블마운틴 2010. 11. 8. 11:33

 

 

written by. 이현오

베트남참전용사 윤창호 씨 오음리-부산 간 '나 홀로 3000리 길' 항의 왕복종단 시위 나서..이 달 15일 여의도 국회 도착 예정

 

 사진으로 들어 난 그의 얼굴에는 피로감이 켜켜이 쌓여 있어 보였다. 구부정한 발걸음에서는 금방이라도 주저앉을 것만 같은 가냘픔과 애잔함도 묻어나 보였다. '참전 영웅들을 화나게 하지 마라' '참전용사들을 국가유공자로' 쓰인 어깨띠를 두르고 한 걸음 한 걸음 내딛는 발걸음에서도 지난 한달 간 대장정의 진한 여운이 고스란히 배겨 있는 듯 했다.

 ▲ 참전용사들을 진정한 국가유공자로 예우해 달라며 나 홀로 3000리 길 대장정에 나선 윤창호 씨ⓒkonas.net

 하지만 전화 상으로 들려오는 그의 음성은 고희(古稀)에 가까운 나이에 걸맞지 않게 카랑카랑해 청년시절 이역 만리 월남에서 공산 베트콩에 맞서 대한민국의 미래를 위하고 월남민의 자유와 세계평화를 위한 작전에 참전했던 참전용사의 기상을 그대로 보여주는 것만 같았다.

 윤창호 예비역 병장. 지난 1969년 청년 윤창호는 스물 다섯 나이에 백마부대 28연대 소속으로 월남전에 참전했다. 당시 월남으로 파병되는 육군장병 대부분이 그랬듯이 윤창호 일병도 강원도 화천군에 위치한 오음리에서 정글지역 작전을 비롯한 파병훈련을 받았다. 그리고 춘천으로 이동해 춘천역에서 경춘선 열차로 청량리에 도착, 다시 서울역에서 부산으로 이동, 부산항 제3부두에서 선박 편으로 항해 후 투이호아에 도착, 월남 파병 장병으로 임무를 수행했다.

 

 그런 윤창호(68세, 인천. 전 인천시광역의원)씨가 41년 만에 그의 젊은 날 파병흔적과 역사가 고스란히 담겨 있는 오음리 현지에서 '발대식'을 갖고 당시의 그 길(철로)을 따라 '나 홀로'의 행군에 나서 1,000리 길 대장정을 시작한 것이다. 그리고 2일로 만 30일을 맞았다. 

 ▲ 도보장정에 임하면서 전화 인터뷰에 응하고 있는 윤창호 씨ⓒkonas.net

 그가 '나 홀로' 외로운 대장정을 출발한데는 분명하고도 확고한 이유가 있다.

 베트남 참전용사를 홀대하는 우리사회 보훈정책에 항의하고 "경제대국임을 자처하는 대한민국을 만들어 내는데 초석이 된 베트남 참전 영웅들의 공로를 인정하고, 최상의 국가유공자로 예우해 줄 것을 촉구"하기 위함이다.

 

 지난달 3일(10.3, 개천절) 화천군 오음리에서 출발해 부산까지 도보로 한 달여 행군을 하는 사이 발바닥은 두세 번의 물집이 잡혔다가 다시 터뜨려지는 반복으로 이제는 차돌처럼 단단해져 아픈 기색을 전혀 느끼지 않을 정도가 되었다고 출발한지 만 30일이 된 2일 오후 기자와 전화통화를 하던 윤창호 예비역 병장은 너털웃음을 지으며 기자의 질문에 응했다.

 

 윤창호 씨는 지난달 오음리를 출발하면서 '나 홀로 3000리 - 死神을 마중하는 심정으로'의 글에서 "죽기를 마다하지 않고 이 길을 선택하여 대장정의 국토종단을 결심하고 장도에 오르면서 평소 내가 정부에 수없이 탄원하고 요구했던 것들을 유서를 남기는 마음으로 다시 강력하게 촉구한다"면서 "누란의 위기에서 (조국을)구해낸 6.25참전 선배님들은 물론 베트남 참전용사들을 위한 형편없는 보훈정책은 차라리 그 위대한 나라사랑의 정신을 우롱하고 있다는 것을 지적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마음속에 품은 격정을 드러냈다.

 

 그는 또 정부 당국에 대해서도 "허울 좋은 보훈정책에 종지부를 찍고 실질적이고 보편타당한 예우를 하도록 보훈 행정의 환골탈태를 충심으로 촉구한다"며 "6.25라는 동족상잔의 비극도 잊히거나 왜곡될 것이 불을 보듯 뻔하다. 이 역사적 진실을 바로잡아 자라나는 청소년들에게 바르게 전하고 6.25 참전영웅들을 국가 최고의 예우로 정중하게 받들기 위한 의원입법을 최우선으로 입안할 것을 강력하게 요구한다"고 밝혔다.

 이어 고엽제로 신음하는 동료전우들에 대한 아픈 마음을 피력하면서 "이들의 천형의 질병은 현재 나타난 전우와 아직 발병하지 않은 전우라 해도 모두 하나같이 잠재적 고엽제 피폭 환자임을 인정하고 물심양면으로 고통 받고 있는 노병들에게 실질적인 도움을 줄 수 있는 정책을 입안하라"고 촉구하기도 했다. 

 

 베트남 파병 참전용사들의 분노가 식지 않고 있음은 어제오늘의 일이 아니다. 이는 참전자들에 대한 정부의 미온적 대우와 파병에 대한 왜곡·변질된 사회적 인식부족에서 기인된 바 또한 크다. 북한 공산주의로부터 침략 방비를 위한 미국의 對 대한민국 안보에 대한 확고한 담보와 함께 조국근대화를 목표로 미국의 요구에 응한 박정희 대통령 결정으로 1965년 3월 비둘기부대를 선두로 첫 파병이후 1973년 철수까지 8년 여 기간 동안 연인원 35만 여명이 월남에 파병됐다.

 

 첫 파병으로부터 45년이 된 것이다. 그러나 지금에 이르러서도 우리사회 좌파세력들은 월남전 참전을 부정하고 폄하하며 심지어는 '학살자'라는 극언까지도 서슴지 않으며 매도해 왔다. 이는 이들 세력뿐 아니라 지난 정부 또한 참전용사에 대한 예우에서도 마찬가지였다. 현재 이들 베트남 참전용사에 대한 대우는 만 65세 이상된 참전용사에 한해서 월 9만원의 참전수당이 전부다.

 

 이 날 기자와 전화 인터뷰에 응한 윤창호씨는 "힘이 들지만 각 지역마다 연락을 받고 나온 동료 전우들이 격려를 해주고 있어 그때마다 다시 힘이 생긴다"며 현재의 참전수당에 대해 질문을 하자 "65세 이상에게 주는 9만원은 우리에게 아무런 가치가 없다"고 한마디로 잘랐다. 이어 "65세 이상에게 주는 것은 경로대우에 다름 아니다"며 "저희에겐 아무런 위로금이나 보상금이 아니다. 그래서 그 자체가 나쁘다"고 했다.

 "제가 하고싶은 것은 실질적인 국가 유공자로 해달라는 것이다. 6.25참전 선배님들에게도 '국가유공자'라는 참전용사 타이틀은 했지만 마찬가지 그분들에게도 9만원이다. 6.25참전 선배님들은 다 65세가 넘으셨지만 저희 참전전우들은 65세 이하는 그나마도 없고 흔해빠진 지하철이나 대중교통 무임승차권도 없다. 이게 무슨 예우고, 대우인가? 홀대 그 자체가 아닌가? 그런 것을 알리고자 하는 것이다"고 강한 어조로 비판했다.

 

 그는 "걸으면서 예전 전우들이 생각나겠다"고 넌지시 던지자 "전사상자 모두를 알 수는 없는 일이지만 기간 동안 5천여 명이 전사하고, 1만 천여 명이 부상을 당했다. 발걸음마다에 알지 못하는 그들의 얼굴이 떠오른다"며 "한번은 천안을 통과하는데 제 모습을 본 처음 대하는 한 남루한 옷차림의 아주머니가 다가와 손을 잡으며, 울먹이는 목소리로 남편과 관련된 얘기를 해 같이 눈물을 흘렸다"고 당시를 얘기했다.

 이어 "이제 제 나이 70을 바라보고, 대부분 전우들 또한 마찬가지다. 우리들이 살아야 얼마나 살겠느냐? 그런데도 죽일 놈의 우리 정부는 보상을 하지 않는다. 보훈처가 뭐라고 하는줄 아느냐? 숫자가 너무 많아서 못해준다고 말을 한다. 세상에 이런 말이 어디 있는가? 국가에 공을 세우고, 오늘의 대한민국이 있게 경제를 살린 영웅들에게 예우는 고사하고 이런 대우가 어디 있을 법이나 한 일인가?"고 목소리를 높였다.

 그의 목소리는 계속 높아졌다. "국가는 우리 전우들에게 빚을 지고 있다. 채무자 입장에서 채권자가 어려운 입장에 있어 빚을 갚으라 하는데도 못하겠다고 하는 것 아닌가. 그러고도 세계 12위 경제대국이라 말할 수 있느냐? 도둑질하지 않으면 되는 것 아니냐?"고 참전용사에 소원하는 정부당국에 원성을 쏟아냈다.

 ▲ 베트남 참전 동료전우들의 에스코트를 받으며 부산에서 서울로 힘겨운 발걸음을 옮겨 딛고 있는 윤창호 씨 ⓒkonas.net

 윤창호씨는 끝으로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말도 잊지 않았다. 특히 우리 민족이 겪은 가장 큰 비극인 6.25전쟁마저도 이들 세대에게 잊혀져가고 있는데 대해 "서글프다"고 했다.

 

 그러면서 "제가 가끔 그런 얘기를 합니다. 6.25 전쟁은 아홉 살 때 일어났고, 20대에는 직접 월남전에 참전 했습니다. 그런데 오늘의 젊은이들은 전쟁의 참혹 상을 몰라요. 기껏 안다고 해봤자 영화를 통해서나 인데 전쟁영화는 말 그대로 조족지혈이죠. 말로는 형용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게 전쟁이라는 것입니다. 그런데 영화에서만 전쟁을 대하다보니 흥미위주로 보고 전쟁을 가볍게 생각하는 것이지요. 전쟁의 참상을 느끼는 계기를 만들어 주고 심어주어야 합니다. 이런 것들이 정부의 몫이자 우리 어른들의 역할이기도 하겠지요."

 

 윤창호씨는 부산을 돌아서 다시 서울로 향하고 있다. 계획대로 이루어지면 오는 15일 오후 2시 여의도 국회의사당 앞에서 대장정의 대미를 장식하게 된다. 베트남 참전용사들의 국가유공자 인정과 그에 합당한 현실적 예우를 표방하며 '나 홀로 3000리' 국토대종주를 감행한 그의 행보가 어떤 영향을 미치게 될지 귀추를 주목해 본다.(konas)

 

* 독자여러분께서 격려해 주신다면 많은 힘이 될 것입니다.<편집자>

 윤창호 씨 핸드폰 : 017-321-2214

코나스 이현오 기자(holeekva@hanmail.net)  

출처 : 월남전/국가보훈/고엽제/부산
글쓴이 : vietvet-김일근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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