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월호 사고 후, 정부에게 책임을 떠넘기는 언론과 야당의
정치적 물타기로 한국에서 제대로 된 방송을 하지 않던 와중,일본의 후지테레비 방송사에서 생존자와 그 관계자들을 상대로 한 심층인터뷰와
입수자료, 상황재연을 토대로 Mr.sunday라는 프로그램을 통해 사고 당시의 상황과 원인을 분석했다.
2014년 9월 중반에
방송된 것이고,정치색 없이 가장 객관적 시선과 증언, 기록들로 만들어진 방송이다.
한국에선 세월호로 정치쇼만 할 뿐,생존자들의 확실한 증언을
토대로 한방송은 하지 않았기에,학생들은 이 일본 언론에 고마움을 표시했다.
한국언론은 생존학생들이 자국이 아닌 일본언론과 인터뷰를
하도록 만든 것에 대한 언론인으써의 수치심을 죽기직전에 느끼게 될 것이다.
방송내용을 간단히 정리해
봤다.
4월 15일 .
인천항에 도착했지만, 안개가 굉장히 짙은 관계로 출항을 미룰 수 밖에 없었다.
출항예정이었던 6시 반에서 11시로 미뤄지고,
그때까지 두고 보기로 한다.
그러나 오후 7시26분경, 무슨 이유인지 갑자기 그
세월호에 모두 태웠고, 저녁식사를 나눠준다.
이 사진은 그 당시 승선하는 학생들이다...
세월호 승객이었던
최모씨는 당시를 떠올리며 이렇게 말한다.
"갑판에 올라가 보면 차를 실었던 때의 다리 같은 것들이 이미 중간쯤까지 닫혀져
있었다,
즉, 선사는 날씨와 관계없이 한참 전부터 출항을
결정하고 다리를 닫기 시작했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실제로 기다려보기로 했던 11시까지 기다리지 않고 두시간이나 앞당긴 오후
9시,출항을 강행한다.
그 날 인천항에서 출항예정이었던 배10척 중,세월호 단 한척만이 인천항을 출발했다.
69살의
이준석 선장은 그 날 갑자기 바뀐 핀치히터였다.(핀치히터:대타) 부선장 정용준 역시 그 전날 입사해 세월호에 처음으로
승선했다.
독자 입수한 "안전점검보고서"
3배 이상을 적재했음에도 모두 양호라고 기재. 박한결 3등항해사는 선장이 작성해야 하는 적재 최종 확인서류를 대신 작성했으며, 3배 이상을 적재했음에도 모두 양호라고 체크.
이에 대한 다른 선원의 우려에 선장이 괜찮다고 했다며
대필한다..
그리고 여기서 이준석 선장은 과적을 눈속임하기 위해 아주...아주 치명적인 잘못을 저지른다.
바로 "평형수 방수 " 버튼을 누른
것이다.
배를 안정시키기 위한 평형수라고 불리는 "바닷물 추"를 바다에 버리고 만 것이다.
즉, 바닷물이 채워져 있는 주머니가 배 아랫편에서 중심을 잡고 있는데 이 주머니를 터트려 물을 빼냈다고 이해하면 되겠다.
확실히 배 전체는 가벼워져 과적의 눈속임은
되지만, 이 때문에 무게중심이 높아져 불안정해지면서 언제 뒤집혀도 이상하지 않은 상태로 만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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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16일
오전 8시경 사고발생 약 50분전 배는 이 때 조류의 흐름이 격렬한 "맹골수도"지나고 있었다
세월호 내부의 최악의 조건과 이상한
진로 변경으로 인해 이미 한계를 넘은 세월호였다.
3등항해사 박한결이 급선회를 하게 되면서, 원래부터 밸런스가 나빴던 배는 좌측
45도로 한번에 기울어졌다.
8시 55분 사고발생 5분 후, 관제센터와
교신기록이다
세월호측에서는 해경에게 연락해달라, 본선이 위험하다,지금 배 넘어가 있다라고 급히 연락한다.
이미 전복의 위기를 느끼고 있었던 승조원들, 하지만 이
시점에서 승객들에게 구명동의 착용지시는 내려지지 않았다.
오전 9시25분 사고발생 35분 후, 관제센터) 세월호 인명구조 관련해서 선장이 직접 판단해서 탈출해주세요.
선장이 최종판단해서 승객을 탈출시킬지 빨리
결정해주세요
세월호) 그게 아니고 지금 탈출하면 바로 구조될 수 있냐고 묻고 있는겁니다!
세월호 측은 당장 탈출하면 구해줄 수 있는가를 묻고 있었다. 승객들의 목숨은 안중에도 없이.
9시46분, 결국 이준석 이 씨발새끼는 속옷바람으로 탈출한다.
이번 사고에서 이준석과 함께 제일 먼저 구조된 송
일등항해사와 박 기관장은 사고가 일어난 뒤에도 캔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있던 것이 밝혀졌고 피난 중 부상당한 조리사 2명을 방치한
채 도망침으로써 사망에 이르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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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시27분
사고발생 약 37분 후에도 그 자리에서 움직이지 말고 가만히 있어주세요라는 선내 방송이 나온다.
생존학생 박모 양은 이렇게
증언한다.
왜인지 모르겠지만 "특히 단원고 학생은 가만히
있어달라"고 계속 말했어요
그 방송을 했던 접객스탭 강 승조원은 처음의 "대기하라"라는
방송은 승객을 진정시키기 위해서는 틀린 것이 아니었으나, 그 후 지시를 하기 위해 조타실에 연결하니 울음소리가 들릴 뿐 새로운 지시를 받을 수
없었다고 한다.
재판기록에 의하면 강씨는, 긴급시의 안내방송은 조타실의 지시에 따른다는 규정이 있었기 때문에 다른 내용은 방송할 수
없었다고 증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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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자신의 실수로 배를 전복시킨 박한결은 사고직후 선배와 이런 대화를 하고 있었다.
삼등항해사와 선배에 의한 SNS에서의
대화
선배) 브릿지에 선장은 있었어?
박한결) 그게 문제야, 선장이 재선의무를 지키지 않았다는거.
선배)
민사소송에 대비해야해..
어쨌든 책임회피 하지 않으면...
자기중심적일지도 모르지만 선장의 책임이 되도록 그런식으로
얘기해두지 않으면 안 돼...
이렇게 빠르게 책임을 전가할 궁리를 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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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판 전, 조타기의 고장을 알리는 알람이 작동하는 일이 가끔 있었다고 했지만, 직접 조타기를 돌린 3등항해사 박한결은 사고 직후 휴대전화 메세지 대화로 선배가 "조타기가 고장났는가?" 라고 묻자 아닙니다"라고 대답한 것이 확인 되면서 사고를 일으키고도 거짓증언을 한 것이 드러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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탈출하기 위해 안간힘을 쓰던 학생들, 비상구까지 앞으로
5m, 겨우겨우 복도에 나온 20명 정도의 여학생들은 비상구에서 새어든 빛 속에서 희망을 보았다
세월호 생존자인 단원고 2학년 박모양은 이렇게 증언한다.
밖에 있는 해경의 모습이 유리를 통해 비쳤고, 그쪽에서도
보였을 터인데, 안쪽까지는 들어오지 않았고, "왜 안쪽으로 구하러 안 오지?" 라는 대화가 오고 갔다고 말한다.
박양과 그 친구들 20명이 있던 비상구 앞에는 확실히 해경이 있었다.
해경은 선내구조를 하지 않고, 갑판에 도망쳐 올라온 사람만 구조 할 뿐 배 안으로 들어가는 것은 하지 않았다.
그래서 더욱 박양과 아이들은 자력으로 탈출할 수 밖에
없었다
가까스로 탈출한
박양은 저 안에 아직 친구들이 있어요 부탁이에요 구해주세요 라고 말했다.
그러나,
"이제 없어' , "배가 많이 기운다!" 그런 말을
남기고, 배에서 멀어지는 해경들.
오전 10시18분 사고발생 1시간28분 후 탈출한 사람들을 그저 배에 태운 채 구조해간다.
그리고
오전 10시 40분 사고발생 1시간 50분
후...
세월호는 바닷속으로 사라진다...
학생들이 배와 함께 가라앉고 있을 동안 뉴스에서는 '전원구조"라고 속보가
나왔다.
160명이 체육관으로 향하고 있다고 하여 친구들을 기다렸으나 그것은 모두 거짓이었다고 박양은 말한다.
생존자와 해경, 양 측의 주장이다.
고교생) 손을 뻗으면 닿을 거리인데도 배에 옮겨타는 일도
없었다. 고교생) "선내에 학생들이 많이 남아있다"고 얘기했지만 쳐다보고만 있었다.
트럭운전수) "안에 사람이 있다"고 얘기했지만
바쁘니까 여유가 없다고 얘기했다.
해양경찰 측의 주장은?
경비정장) 당황하여 선내에 진입지시를
깜빡했다.
항공구조사) 여객선이 침몰하고 있다는 것만 듣고, 선내에 수백 명이 있다는 건 몰랐다.
경비정대원) 30년을 넘는 해경 생활 중 침몰하는 배에서
인명구조훈련이 행해진 건 한 번도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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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지테레비에서 해경관계자와 만나 인터뷰 한
내용이다.
제작진 )) 진입명령은 내려졌는가?
왜 배에 진입하지 않았는가?
그러자 해경관계자는 이렇게 대답한다.
해경관계자)
그당시 123정이 전혀 역할을 안 한게
아닙니다. 선체가 기울어진 상태에서 진입을 할 수 없었다.
123정이라는 배는 구조를 할 수 있는 배가 아닌,경비를 하는 배다.
가장 가까이 있었기 때문에 갔을 뿐이다.
일일히 그런 것에 대해서 책임을 묻는다고 한다면 과연 누가
해경에서 일 할 수 있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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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송이 끝날 무렵, 방송 진행자는 이렇게
말한다.
2014.9.18일 신문 기사엔 "침몰여파 한국국회 마비" 라는 제목이 있다.
사고 원인의 진상 규명을 위한 특별법 제정 때문에 여야가 대립하고 있어서 법안이 하나도 통과되지 않고 있는 상황이 계속되고 있다.
사고로부터 5개월이 지난 현재도 일본에서 이렇게 크게 보도될
정도로 혼란이 계속되고 있는데, 단순하게 생각했을 땐 여야는 관계 없다고 생각하지만 어찌보면 진실이 밝혀지면 입장 난처한 정치가가 있는게 아닐까
조차 생각하게 된다.
이렇게 선장이나 항해사 등, 이런 대응밖에 할 수 없었던 것 자체가 어떤 의미로는 출항하기 전부터 고교생이
이런 사고를 당할 운명을 정하게 된 것이라고도 말할 수 있을지도 모르겠다.
이런 형편없는 배가 이렇게 오랜동안 운행하는것 자체도
무섭지만 이 승조원들도 엉망진창에,전혀 팀으로서 선원의 기능을 하고 있지 않다는 걸 알수 있고, 이렇게나 많은 사람을 태우면서..
이딴 식의 대처는 통용되지 않는게
당연하다.
지연,혈연,뇌물에 묶인 사회를 바꾸지 않으면 또 다시 같은 사고가 일어나지 않을까 하는 위기감이
든다.
여기선 역시 대통령이 남은 임기 탈탈 털어 바꾸지 않으면
똑같은 사고가 일어나도 이상하지 않다.......고 말했다.
여기까지 간략하게 정리한
내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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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조차, 진실이 밝혀지면 안되는 정치가가 있는 것이 아니냐고 말했다.
방송당시, 사고 후 5개월이나 지났는데 아직도 저러고
있냐며 얼굴을 찌푸리던 저 진행자는, 2년 반이나 지난 지금까지 이 모양 이꼴인 것을 보고 뭐라고 생각할까.
이 방송을 보면, 이 세월호 침몰의 원인은 너무나 간단하면서, 반대로 너무나 소름끼치는 사건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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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월호는 왜 하필 그날 이준석이 선장으로 교체되었는가.
다른 9척의 배가 출항을 포기할 만큼 악조건이었음에도, 지켜보겠다고 약속한 11시에서 왜 굳이 두시간이나 앞당겨 출항했는가?
교육부가 분산 승선을 당부했음에도 교사들은 왜 이것을 어기면서까지 학생전원을 태웠는가.
그 짙은안개 속에서 출항을 강행할 때 왜 그것을 거부하지 않았는가.
이준석은 과적임을 알고 있었음에도, 평형수 방수 버튼을 누른 이유가 무엇인가?
아무리 무능한 선장이라 할지라도 이것이 굉장히 위험한 행동이라는 것을 모를리가 없는데,.
단순히 배를 가볍게 하기 위해 평형수를 방수했다는 말인가?
이미 3배의 과적을 한 상태에서?
만약 그것에 대한 지식이 없었다면 누군가에게 사주라도 받은 것인가?
송 일등항해사와 박 기관장은 사고가 일어난 뒤에도 캔맥주를 마시고 담배를 피우는 여유를 보였다.
자신들의 목숨만큼은 보장되어 있다는 자신감이었나.
자신들 만큼은 구출될 것이라고 장담하지 않고서야 그렇게
기울어진 배에서 술마시고 담배를 피울 수 있는 것인가?
도망간 선장 이준석과 그 선원들은 왜 전남 해경의 집에 숨어 들어가
있었는가?
전남해경은 왜 미국 일본 구조헬기지원을 거부했는가?
탈출한 학생이 배 안에 생존자가 있는 것을 알렸음에도 불구하고, 해경은 그것을 외면했다.
해경의 주장대로 123경비정이 구조가 아닌 경비를 위한 배이기 때문에 구조를 하지 않았다면, 그 급한 상황에서 미국,일본 구조헬기의 지원을 거부한 이유가 말이 안된다는 얘기다.
도대체 무슨 이유에서, 구조도 못하는 새끼들이 그 구조지원을 거부했나?
그렇기 때문에 나는 그 경비정이 감옥을 간 것을 두고 억울한 징역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에게, 결코 억울한 징역이 아니라고 말하고 싶다.
세월호가 완전히 가라앉은 10시50분,그 뒤에 경기도 교육청은 전원구출 문자를 보냈다.
학부형들에게 왜 두 번이나 "전원 구출"이라는 문자메시지를 발신했는가?
당시 단원고 관계자 김씨는 사고 소식듣고 학교에 가 있었고 답답한 마음에 밖에서 담배를 피고 있었다.
그런데 어떤 40대 여자가 전원구조 됐다고 큰소리치면서 학교 건물 안으로 달려갔다.
김씨도 따라 들어가서 그 소식을 알리던 와중 누군가 김씨를 강단에 세웠고, 김씨는 마이크를 들고 “학교 관계자의 가족이다.
학생들이 전원 구조됐다고 한다”고 말했다.
그
때가 오전 10시 55분.
그 후 MBN이 11시 1분에 전원구조 보도 그 후 YTN이 11시 4분 연달아 kbs,mbc등등
줄줄히 보도 했다.
경기도 교육청과 언론은 무슨 근거로 전원구출이라는 허위사실을 알렸는가?
이런 상황에서, 청와대의 대통령 7시간을 물고 늘어지는 이유가 무엇인가?
문재인을 비롯한 야당은 마치 기다렸다는 듯이 달려가 언론들과 합세해서, 정치적 플레이를 해댔다.
구원파 유병언의 빚환수조치를 하지 않은 것은 파산관재인인 문재인과,그 뒤를 이은 노무현의 조카사위 였고,이 파산관재인은 법원에서 정해주는 것임에도,너무나 사정좋게 노무현정권 핵심측근이 그 파산관재인으로 임명되었고, 둘 다 빚환수 조치를 하지 않았으며,그 뒤를 이어 노정부는 구원파 유병언의 빚 2000억을 탕감시켜주었다.
유병언이 죽어서 가장 안도의 한숨을 쉰 사람은 누구인가?
학생들의 목숨의 가치를 정치도구로 써먹으며 정부를 괴롭힌
자는 누구인가.
그 자가 이번 세월호의 책임자 아니던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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