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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귀천... 故장영희

마블마운틴 2009. 10. 9. 10:01
[감동] 귀천 - 장영희
  • 글쓴이: 천국
  • 조회수 : 49
  • 09.05.12 14: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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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초기 문화방송이 있던 인사동 네거리에서 안국동 쪽으로 1백여미터 걸어가느라면

오른쪽에 < 歸天 > 이라는 손바닥만한 찻집 간판이 보인다.

< 귀천 > 은 천상병의 시 제목중 하나로 천상병의 아내 목순옥이

찻집을 열면서 옥호로 쓴것이다.

천상병의 오랜친구인 시인 강태열이 3백만원을 선뜻 내 놓아서

이루어진 이 작은 찻집이 천상병과 그의 아내 목순옥의

생활 터전이다.

대 여섯평 되는 실내에 테이블 서너개, 의자는 여남은 개, 벽에는

서양화가 변영원의 유화와 < 걸레스님 > 重光의 그림이 걸려있다.

문인으로는 조정래, 전상국 , 최절로, 신세훈,민영, 신경림, 민병산,

채현국, 김재섭, 박이엽,등이 단골손님이고

화가로는 하찬두, 변영원, 김영주, 등이 자주 얼굴을 들이미는데

모두가 천상병의 오랜 친구들이다.

아내 목순옥이 확보해주는 막걸리 두되면 천상병은 수락산 기슭에서

제왕처럼 흡족한 하루를 보낸다.

그러다가 매주 금요일이면 거처를 빠져나와

서울 나들이를 한다.

친구들을 만나보고 < 귀천 > 에 들러, 브람스 4 번 을 들으며 아내의 퇴근시간을

기다린다.

밤이되어 함께 수락산 기슭으로 돌아가는것이 이들 부부에게는

더없이 즐거운 여행이다.

" 아기는 없지요 ? "

" 천만에요. 우리집엔 일곱살짜리 소년이 있답니다. "

지독하게 늙은 노총각 노처녀가 만나서 그런지 그들 부부에겐

아기가 없다.

그러나 목순옥은 일곱살짜리 아기가 있다고 서슴없이 대답한다.

그렇다.

그녀에게는 아기가 있다. 쉰일곱에서 쉰을 뺀 일곱살짜리 소년

천상병이 있다.




바둑에 관한 책만 전문으로 출판하는 玄玄閣 은 본래 관철동의

한국기원 건물 5층에 있었는데 몇년전 Y M C A 옆 골목으로 옮겼다.

우리가 < 객주 > 라고 부르는 사장 안영이 는 대단히 사교적인 사람이라서

그의 사무실은 늘 손님들로 붐빈다.

김영랑, 서정주에 이어 한국 서정시의 법통을 잇는 시인으로 평가 되기도 하는

박재삼이 이 사무실을 함께 쓰고 있어 민병산, 민영, 신경림,김광림 등

문인들이 자주 찾아온다.

그밖에 신문인 등산가 바둑인 등 여러가지 직업의 인사들이

무시로 들락거린다.

작년 겨울 어느날 천상병이 현현각을 찾아왔다가

등산복 차림의 國手 金寅 을 만났다.

" 아이구 김 국수 ! " < 지옥에서 부처님을 만난것처럼 > 천상병은 큼직한 포즈로

김인의 손을 덥썩 잡았다.

그리고는 이내 본론으로 들어갔다.

" 김국수 천원만 ! "

예상하고 있었다는듯이 金寅은 천원짜리 한장을 내 놓았다

천상병에게 있어서 김인은 일종의 보증수표였다.

언제든지 만나기만 하면 요구 액수가 즉시로 조건없이 인출되는 사람이었다.

그런데 이날은 좀 달랐다.

" 그런데 천 선생님 , 제게도 거절할 기회를 한번쯤 주십시오. "

" 아무때나 거절하이소. 거절하는 건 金國手의 자유 아닙니까, "

" 그렇지가 않습니다. 천선생님은 미리 제게서 거절할 기회를

빼앗아 가버리니까 제겐 도리가 없읍니다. "

" 천만의 말씀, 이 천상병이가 남의 자유를 빼앗다니 그런 벼락 맞을

소리가 어디 있읍니까. ? "

" 생각해 보세요. 오늘도 마찬가지지만 천선생님은 항시 여러사람 앞에서

천원을 요구 하십니다. 그러니까 전, 거절하고 싶어도

거절할 자유가 없는겁니다. 천상병 선생에게 천원을 드리지 않는다면

여러사람 앞에서 金寅이가 인색한 친구가 돼 버릴 될것이고 ,

또 金寅에게서 천원을 거절당했다면 천선생 체면은

어떻게 되겠읍니까 ? "


" 우 와하하하..... "

천상병이 그 토록 크게 웃은것은 자기의 속셈을

들켰기 때문이었으리라.


천상병은 아는 사람을 만나면 손바닥을 내보인다.

그것은 20 년 이상 몸에 밴 천상병식 인사법이다.

천상병이 그의 손바닥을 상대에게 보여주는 것은 말하자면 상대에 대한

애정의 표시이다.

그를 만나서 그의 손바닥을 구경하지 못한 사람이라면 천상병으로부터

경멸을 받고 있다고 믿어도 거의 틀림없다.

천상병이 손바닥을 보여준 대가로 받는 가격은 사람에 따라 다르게

정해져 있다.

그것은 자기와의 친분도에 의해 정해지는것이 아니라 상대방의 평균

주머니 사정에 의해 정해진다.

천상병식 감정가격이 있는겄이다.

왕대포 한잔 값에서 최고로는 그 열잔값인데 요즘은 이백원에서

이천원이다.

천상병의 생각으로 그 정도면 상대가 경제적 타격을 입지 않을것으로 믿어지는

액수이다.

그런데 그 20 年 묵은 감정가격이 때때로 희비극을 연출하기도 한다.

패가망신한 옛날 부자에게 2 천원은 부담이 되는 액수이며

형편이 나아진 옛날 가난뱅이에게 2 백원은 너무 낯 간지러운 것이다.

최근 어느날 천상병이 신경림에게 손바닥을 보여주었다.

천상병에게 있어서 신경림은 언제나 왕대포 한잔 짜리였다.

" 이 봐 상병이, 난 이제 살기가 좀 나아졌다고, 내 책에서 나오는

인세도 제법있고 마누라도 벌이가 괜찮단 말이야.그러니까 이제부터

5 백원으로 하자. "

" 문디 자식 , 수작하지 마라 넌 아직 2 백원짜리야 . "

이런식이다.

60년대 말 어느날 오후,

천상병이 광화문의 조선일보사 논설위원실에 나타났다. 천상병에게 있어서

광화문은 노다지의 광맥이었다.

조선일보, 동아일보, 한국일보, 동아방송 등 언론기관이 거기 있었고

기자나 논설위원중에 아는 사람이 많았던 것이다.

언론기관에 있는 친구들이란 일단 봉급장이였으므로 큰돈은 몰라

도 푼돈 빼앗기에는 수월했다.

나중에 시 한편 쓴다는 명목으로 빼앗아 오거나 언제 나올른지 모르는

원고료를 담보로 꿀수가 있었다.

그러나 천상병은 남에게 꾼돈을 갚는 사람은 아니었다.

조선일보 논설위원실에는 남재희와 이어령이 있었다.

그리고 그 시각에 마침 들른 소설가 전광용도 있었다.

전광용은 나이로 선배 뻘이었지만 무슨 까닭인지 천상병은 그를

좋아하지 않는거 같았다.

천상병은 전광용을 못본체 하고 남재희에게 다가가 손바닥을 내보였다.

남재희는 5 백원짜리였다.

" 상병이 ! "

남재희와의 거래가 끝나기도 전인데 전광용이 그를 불렀다.

" 이리 와, 내가 천원 주께. "

그러면서 전광용은 지갑을 꺼내는 시늉을 했다.

천상병은 찡그린 얼굴로 한동안 그를 노려봤다.

그러더니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문디 자식 ! 내가 언제 니 보고 돈달라 하드나 ! "

머쓱해진 전광용이 공허한 웃음으로 얼버무렸다.

천상병은 항상 좋고 싫은 사람이 분명했다.

1960 年 대 초 그 어려운 시절에 천상병이 하루도 술을 거르지

않을수 있었던것은 그 의 땟국물 반질반질한 손바닥 덕분이었다.

남에게 손바닥을 뒤집어 보여줄수 잇는 그의 천진난만함 덕분이었다.

그는 결코 남의 술좌석을 기웃거리는 비겁한 짓은 하지않았다.

자기 돈을 내고 자기 술을 마셨다.

단순히 술 한잔 얻어마시기 위해 얼굴 맞대기 싫은 사람과 같은 술좌석에

앉아 히히덕 거리는 불편한 짓은 하지 않았다.

천상병은 남에게 손바닥을 구경시켜 준 대가로 자기가 가고 싶은

술집에 가서, 자기가 마시고 싶은 술 의 종류를 선택하여

자기가 마시고 싶은 양만큼 자기가 마시고 싶은 친구와 더불어

마실수 있는 자유를 획득했던것이다. 

 

 



 

지난 9일에 ......

이세상에 소풍 왔다가 

하늘나라로 돌아가신

장영희 교수

안녕히 가세요!

 

 

 

 

 

 

 

 

출처 : 귀천... 故장영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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