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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특파원 칼럼] 어느 참전용사의 마지막길

마블마운틴 2011. 3. 25. 16:33

[특파원 칼럼] 어느 참전용사의 마지막길

 

15일 출근길의 워싱턴 시내에는 일제히 조기(弔旗)가 나부끼고 있었다. 정식 기념일도 아닌 이날 조기가 걸린 것은 지난달 27일 세상을 떠난 한 노병(老兵)의 장례식을 추모하기 위한 것이었다. 라디오에서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를 위해 특별지시를 했다"는 뉴스가 나왔다.

프랭크 버클

스(Buckles)라는 이름을 들어본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그는 110세를 일기로 사망하기 전까지 1차 세계대전(1914~18년)에 참전했던 미군 중 최후의 생존용사였다.

하지만 그는 흔히 말하는 '전쟁영웅'과는 거리가 멀었다. 1917년 16세의 나이로 입대, 프랑스 서부전선 후방 배치, 1년 남짓 앰뷸런스 운전병으로 근무…. 그의 군(軍) 이력은

 이게 전부다. 전투 현장에는 가본 적도 없다. 당연히 부상을 당하지도 않았고, 무공훈장도 없다.

▲임민혁 워싱턴특파원

그럼에도 이날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열린 그의 장례식은 여느 '국가적 영웅'의 그것 못지않게 성대했다. 국방부가 직접 주재하며 최고 격식을 갖췄고, 수천 명의 추모 인파가 몰렸다. 장례식 시작 2시간 전에 식장에 도착한 기자는 "사람이 너무 많아서 더이상 못 들어간다"는 말을 들어야 했다. 오바마 대통령과 조 바이든 부통령이 함께 조문을 한 것은 나중에 TV를 보고 알았다. '군번 15577번, 상병 전역.' 버클스는 이날 이렇게 미국 최초의 육군 대원수이자 1차 세계대전 때 유럽원정군 총지휘관이었던 존 퍼싱 장군 옆자리에 안장됐다.

고향인 웨스트버지니아의 농장에서 조용히 노년을 보내던 버클스는 부시 행정부 시절 참전용사들에 대한 재조명이 본격화되면서 '명사(名士)' 대접을 받기 시작했다. 백악관·의회·국방부 등이 그를 초청했고, 학교에서도 '살아있는 역사책'의 강연을 듣기 위해 앞다퉈 그를 모셨다. 영국의 국방장관은 농장까지 직접 찾아와 경의를 표하기도 했다. 그의 집에는 각지에서 감사의 편지가 쇄도했다. 그는 108세 때 워싱턴포스트(WP)와의 인터뷰에서 "무슨 전쟁영웅도 아닌 나에게 이렇게 관심을 가져주는 게 고마워 손이 떨려서 더 못쓸 때까지 사인을 해서 답장을 보내고 있다"고 했다.

미국민들의 이런 관심과 애정을 버클스 개인에 대한 것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그보다는 1차 세계대전에 참전한 470만명의 참전용사, 11만6000명의 전사자, 20만4000명의 부상자 전체, 더 나아가 미국을 위해 희생한 모든 용사에 대한 경의(敬意)라고 보는 게 맞을 것이다.

제이 록펠러 상원의원 등은 결국 무산되기는 했지만 "참전용사들을 영원히 기억한다는 의미에서 버클스의 장례식을 (알링턴 국립묘지보다도 더 격이 높은) 국회의사당 로툰다(중앙홀)에서 치르자"는 서명을 돌리기도 했다. '로툰다 장례식'은 미국 역사상 단 32명, 그것도 대부분 전직 대통령들이 누린 최상의 영예다.

버클스의 장례식은 미국이 참전용사들의 자긍심을 살려주기 위해 얼마나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사례이다. 제대로 된 나라는 이래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