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물 맛이 예술인 재첩국)
마산 사람들이 부러웠다. 해장국으로 그만인 복국을 맨 날 먹을 수 있으니까. 남원 사람들이 부러웠다. 혀에 착 감기는 구수한 추어탕을 맨 날 먹을 수 있으니까. 서울에서도 복국이나 추어탕은 얼마든지 먹을 수 있다. 하지만 본고장에 가서 먹는 맛과는 달라서 하는 얘기다.
이제는 하동사람들이 부럽다. 더 정확하게 말하자면 하동 재첩국을 먹고 나서부터 그렇다. 재첩국을 늘 가까이 두고 먹을 수 있는 그들이 어찌 부럽지 않겠는가. 뽀얀 재첩국을 한 숟가락 떠 입안에 넣어본다. 아.... 두말 할 필요가 없는 삼삼하면서 개운한 맛이여. 인공 조미료는 도저히 따라올 수 없는 이 감칠맛이여. 손톱만큼 작은 재첩들이 한데 어울리니 단박에 혀를 복종시켜 버리는 맛이여.
(재첩국 상차림, 국물을 거의 먹을 때쯤 사진에 나온 재첩국보다 더 많은 양을 서비스로 준다. 그래도 남겨지지가 않는다)
(참 개운한 맛이다)
거짓말 안 보태고 미치고 환장하게 하는 맛! 그 어떤 조개가 이 맛을 보여주겠는가. 그릇째 들고 후루룩 마셔본다. 이런! 국물이 확 줄어든다. 실제로 확 줄어들진 않았지만 느낌에 그렇다. 그 정도로 국물 줄어든 게 아까운 음식이다. 억지로 먹다 먹다가 그래도 남기게 되는 다른 국물음식들과는 확실히 갭이 있다.
지난 5월 19일 경남 하동군 화개면으로 떠났다. 제12회 하동야생차축제에 다녀오기 위해서다. 기차로 구례까지 가서 쌍계사행 버스를 탔다. 버스는 19번 국도를 달린다. 아직 자연적인 모습을 간직하고 있는 섬진강, 섬진강은 그래서 좋다. 전봇대만 안 보인다면 더욱 좋은 풍광을 자랑 할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살랑하게 불어오는 바람결에 머리카락이 춤을 춘다. 자연적 요소들을 온 몸으로 만끽하니 금세 선물이라도 받은 기분이다. 화개면에서 쌍계사 방향으로 들어서자 물줄기 양쪽으로 녹차 밭이 펼쳐진다. 축제장은 이미 많은 사람들로 붐비고 있다. 날도 좋아 하늘과 구름은 어린이가 그린 그림 같기만 하다.
(재첩과 부추, 다진고추. 꾸밈이 거의 없는 음식이다)
축제장 한쪽에는 다양한 먹거리를 팔고 있는 저잣거리가 있다. 이곳에서 하동 재첩국을 맛봤다. 육안으로 보기에 참 단촐 하기만 하다. 재첩국에다 잘게 썬 부추와 다진 풋고추가 전부이니 말이다. 음식을 내오는 아주머니 말로는 재첩국은 남는 게 별로 없는 장사란다. 재첩이 많이 나지 않아 귀해졌기 때문이리라. 환경오염이 원인이다. 그렇게 흘러도 오염되는 강, 것도 모자라 국토의 생명줄을 개발하려는 움직임이 있다.
수 천년 흘러온 강줄기에 인간의 손길이 닿으면 어떻게 될까? 뻔할 뻔자 아니겠는가. 지금은 환경문제가 범지구적 문제로 대두되고 있다. 하지만 우리의 강은 거꾸로 가는 시계가 되려고 한다. 개발보다는 보존하는데 더 많은 관심과 노력을 가져야 하는 세상인데도 말이다. 개발을 바라보는 마음이 편치 않은 이유다.
진리는 단순한데 있다. 재첩국을 먹으면서 맛도 단순한데 있다는 생각이 든다. 꾸미지 않은 단순한 맛이 진짜 맛! 재첩은 그 단순한 맛을 품고서 인간의 야욕에 경고를 보내고 있는 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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섬진강 물길 따라 떠나는 하동 맛기행
바람이 분다.봄바람과 강바람에 심신의 피로도 말끔히 날아 갈 것만 같다. 섬진강이 하동지역을 흐르고 있다
섬진강을 품고 있는 하동. 산과 강이 조화로운 녹색의 땅. 자연의 정취가 충만한 고장이라 도시인의 정신적 휴식처로도 안성맞춤이다. 이곳으로 5월 맛기행을 떠나보면 어떨까. 섬진강 물길따라 흘러가다보면 제철 별미와 만나게 된다.
하동을 대표하는 먹을거리인 재첩은 5~6월에 먹어야 제맛이다. 이 기간의 재첩은 조개 특유의 향이 진해질 뿐 아니라 통통하게 살이 올라 그 맛 또한 절정이다. 섬진강의 또 다른 별미인 은어회에는 자연의 미향이 담겨져 있다. 혹자는 수박향을 머금고 있다고도 한다. 흐르는 1급수에서만 살아 깨끗하기 이를 데 없는 은어회 한점을 초고추장에 찍어먹는 맛이란... 세상 시름이 뭐노라 하노라.
섬진강재첩횟집의 수족관에서 꺼낸 참게의 크기가 장난 아니다
섬진강의 명물, 참게도 빼놓을 수 없는 미식거리. 섬진강 참게는 특유의 풍미가 출중해 향을 음미하며 먹는 맛이 탁월하다. 일반적으로 참게장과 참게매운탕요리가 많이 알려져 있다. 헌데 하동에서만 맛볼 수 있는 참게요리가 있는데 참게가리장국이 그것이다. 예로부터 하동지역에서 즐기는 향토요리라 일반적으로 많이 알려져 있지는 않다. 하지만 담백한 맛이 아주 그만이고 특히 고춧가루가 들어가지 않아 참게의 풍미가 그득한 게 특징이다.
하동의 향토요리 참게가리장국
섬진강재첩횟집 주인장의 설명에 따르면 어릴 때부터 섬진강에서 잡은 참게에 밀가리(밀가루)를 넣고 끓여먹었다고 한다. 때문에 참게에 밀가리(지역 방언)가 더해져 참게가리장국이란 요리명이 붙은 게 아닌가 싶다. 당시야 쌀가루보다 밀가루가 흔해 그렇게 요리했지만 요즘엔 찹쌀가루를 넣는다.
우연찮게 그 지역에서 난 식재료로 만든 음식을 만나는 즐거움. 이런게 바로 지방으로 맛기행을 떠나는 묘미이기도 하다. 알싸한 맛에 후각을 예민하게 만드는 초피의 풍미는 언제나 매력적이다.
지리산자락에서 자란 참취나물 역시 고유의 향취로 입맛을 돋군다. 살짝 데친 참취에 간장과 참깨만 더해 무쳤다. 재료의 맛을 살릴 대로 살려낸 조리법이다 보니 접시에 음식이 아니라 자연을 담은 듯하다.
참게 간장게장
참게장까지 차려지니 이 아니 즐거울 소냐. 도시의 게장은 달기만 해서 단맛 빠지면 무슨 맛일까 싶은데 여긴 아니다. 단맛은 절재 했고 재료의 맛을 살렸다. 참 감칠난 참게장. 김을 함께 내 놓는 건 주인장의 센스? 김밥에 참게장의 간장으로 간을 맞추니 밥이 달다.
참게가리장국
뚝배기에 보골보골 끓는 채 나오는 참게가리장국. 첫 숟가락에 입에 착 감긴다. 배초향(방아잎)의 풍미가 참게를 만나니 거 참 절묘하네. 절묘하다. 맛객이 배초향을 거부감 없이 즐기자 주인장이 보기에 신기했나 보다. "도시에서 오신분이 어떻게 방아잎을 다 아세요?" 훗! 나물 좋아해 이나물 저나물 안먹어본게 없을 정도인 맛객을 뭘로 보시나. 참게 등껍데기를 골라집자 주황색 알들이 그득하게 붙어있다. 요거이 참 고소하네.
국물은 걸쭉하지만 담백하고 시원하다. 참게탕이 빨개야만 하는 줄 알았던 건 익숙함에 미각이 홀렸기 때문이다. 직접 맛보기전까지만 해도 큰 기대를 안했던 이 허여멀건한 탕이 이리 새로운 미각의 세계로 인도할 줄이야.
한가지 흠이라면 참게가 크다보니 다리뼈가 억세서 먹기가 다소 부담스러웠던 점. 요리할 때 망치로 살짝 두들겨 만들면 어떨까 싶다. 아니면 가위를 준비해주던가.
식사를 마치고 나오다 보니 과수원 바닥에 쑥부쟁이나물이 지천이다. 주인장에게 물어봐서 제초재를 치지 않았다면 적당량 뜯는 것도 맛있는 즐거움이겠다. (2008.5.8 맛객)
옥호: 섬진강재첩횟집 메뉴: 참게가리장국 30,000원(小). 40,000원(大). 참게탕 30,000원(小). 40,000원(大). 참게장정식 10,000원. 하동재첩국 8,000원. 재첩회 30,000원, 20,000원. 은어회 30,000원, 20,000원 등 전화: 055) 883-5527, 055) 883-4588 주소: 경남 하동군.읍 화심리 9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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