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억의 옛노래

[스크랩] 어머님전 상서 / 이화자

마블마운틴 2016. 1. 21. 09:03

어머님전 상서 / 이화자 추미림 작사 김명파 작곡 이 노래는 당대의 일류 작사가인 조명암님이 가슴 저리도록 아픈 사연을 노랫말에 담아 부평 어느 객주집의 노래 잘 한다는 소문이 난 이화자님을 가수로 발굴하여 김영파(본명;김용환)님이 곡을 붙혀 많은 사랑을 받은 노래이다. 파란 많은 어린 시절을 보냇을 이화자님이 부모님께 향한 마음을 절절히 담은 애절한 곡이다. 어머님전 상서 / 이화자 노래 어머님전 상서 / 장세정 노래 어머님전 상서 / 이화자 추미림 작사 김명파 작곡 어머님 어머님 기체후(氣體候) 일향만강(一向萬康)하옵나이까 복모구구(伏慕區區) 무임하성지(無任下誠之)로소이다 하서를 받자오니 눈물이 앞을 가려 연분홍 치마폭에 얼굴을 파묻고 하염없이 울었나이다. 어머님 어머님 이어린 딸자식은 어머님 전에 피눔물로 먹을 갈어 하소연 합니다. 전생에 무슨 죄로 어머님 이별하고 꽃피는 아침이나 새 우는 저녁에 가슴치며 탄식하나요. 어머님 어머님 두손을 마주 잡고 비옵나이다. 남은 세상 기리기리 누리시옵소서 언제나 어먼님의 무릅을 부여안고 가슴에 맺힌 한을 하소연 하나요 돈수재배(頓首再拜) 하옵나이다.
    이화자 (李花子) 1918년경 인천 부평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이순재(李順載)이며 출생이나 성장에 관한 것은 거의 알려져 있지 않다. 보통학교를 졸업한 뒤 기생이 되어 당시 인천권번 소속으로 인천 부평에 있는 술집에서 노래를 부르고 있었다. 1935년 가요계의 대부격인 작곡가 김용환(김정구의 형)이 인천 부평에 노래 잘 부른다는 열아홉살의 작부가 있다는 소문을 듣고 찾아 갔다. 외모와는 달리 목소리에 감탄을 한 김용환은 그녀를 서울로 상경시켜 뉴코리아 레코드사와 전속가수로 계약 하고 조명암 작사, 김용환 작곡인 "초립동"을 첫 작품으로 가요계에 데뷔시켰다. 그 뒤로 그녀는 부르는 노래마다 히트를 하였고 그녀의 인기는 하늘을 찔렀다. "화류춘몽"은 기생의 신세를 노래한 것인데 발표가 되자마자 거리는 온통 이화자의 광고 포스터와 화류춘몽 노래소리 뿐이었다. 애처롭고 간드러지게 흐느껴 울부짖는 듯 한 그녀의 노래 소리는 듣는 이의 애간장을 녹이기에 충분했다. “화류춘몽”의 노래로 장안에는 자살소동이 빈번히 일어나기도 했는데 종로에 있는 바에서 종사하는 종업원이 가사가 자기가 살아온 지난 세월과 너무도 흡싸한 처지와 같음을 비관한 나머지 자살을 하게 되었다는 신문의 보도였다. 마포에 있는 술집의 화류계 여성도 양잿물을 먹고 자살소동이 일어났다고 하며 장안의 화류계 여인들이 이 노래를 부르며 울고 비관하여 조선총독부에서는 레코드회사에 판매 금지령을 내리기도 했다. 이화자는 과거에 하류계에 몸담았던 지난날이 그녀를 괴롭혀 담배를 많이 피었고 술은 점점 더 마시게 되어 끝내는 아편까지 손을 대 중독자가 되어 버렸다. 광복 후 이화자는 서울 종로 단성사 뒷골목 단칸방에서 비참하게 35세의 나이로 쓸쓸히 세상을 떠나고 말았는데 그녀가 남긴 노래로는 “어머님 전상서” “화륜선아 잘 가거라“ ”꼴망태 목동“ ”초립동“등 수많은 히트곡이 있다.


출처 : 세계 풍물 여행기
글쓴이 : 상운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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