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스크랩] 울고넘을 사람없는 천등산 박달재 (제천시 봉양읍)

마블마운틴 2013. 8. 20. 16:44

 

 천등산 박달재 옛 길  

 
간혹...길을 가다 넓고 평탄한 길에서 벗어나 샛길로 접어들고 싶을때가 있다
잘 닦여진 평탄대로를 버리고 슬그머니 샛길로 접어들어 다시 만나게 되는 인생의 길 !
그 길이 비록 멀고 험하다 할지라도 한번쯤은 빠져들고 싶은 길이다 
 
천등산 오르면서 뒤돌아 본 박달재 관문
 
충주에서 매끈하게 뚫린 4차선 자동차 전용도로를 따라 제천방향으로 진행하다 보면
이처럼 박달재 옛 길로 올라가는 관문과 만나게 된다
 
박달재 옛 길로 올라가려면 96년도에 개통된 박달재 터널입구에서 자동차 전용도로를 버리고
이처럼 "박달재"라고 쓰여져 있는 관문을 통과해야 한다
 
요즘 이 길은 충주, 제천 사람들은 잘 이용하지 않는다. 주로 멀리 도회지에서 오는 관광객들이
가끔 이용하는 길이기 때문에 언제 어느때 와 봐도 늘 이렇게 한산한 모습이다
 
박달재 옛 길을 따라 정상으로 오르는 중
 
박달재 옛 길은 충주시 산척면에서 시작되어 제천시 백운면과 봉양읍까지
약 30리나 이어지는 길고 지리한 고갯길이었다. 그 구비수만 해도 아흔아흡구비 !
 
하지만 지금으로부터 약 13전인 1996도에 2Km에 달하는 박달재 터널이 개통되면서
지금 위의 사진에 보이는 박달재 옛 길은 쓸모없는 길이 되었다
 
박달재는 박달이와 금봉이의 전설이 있기 직전인 조선중엽까지는 이등령이라 불렸으며
대관령처럼 아흔아홉 구비나 되는 고갯길을 지리하게 넘어야 했었다
 
박재홍 선생의 노랫말을 들어보면 천등사안 ~ 바악 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니임아 ~
이렇게 나가는데 천등산은 지금 현재 넘고 있는 산이 아니라 충주시 산척면에서 시작되는 다릿재가
바로 천등산이다. 그리고 그 다릿재가 이곳 박달재까지 길게 이어지는 것이다
 
박달재 정상 - 제천시 봉양읍
 
박달재 정상 서원 휴게소 - 제천시 봉양읍
 
박달재 정상의 서원 휴게소 앞 마당엔 수십여개의 조형물들이 세워져 있는데
박달이와 금붕이의 조형물도 있지만 해괴한 남근 조형물도 수없이 많이 세워져 있다
그 중 그 해괴한 남근 조형물들은 빼고 박달이와 금봉이가 포옹하는 조형물 몇개 여기 소개해 본다
 
전설의 주인공 박달이와 금봉이
 
박달이와 금봉이가 이곳 박달재에서 헤어지는 것이 너무 아쉬워 서로 꼭 끓어앉고 포옹 하고 있는데
그 옆에 삼태기 쓰고 있는 저 사람은 머 하는건지 모르겠다
 
박달이와 금붕이 옆, 해괴한 조형물
 
여기다 박달이와 금봉이의 사연을 이야기 하려고 했었는데 저 삼태기쓰고 쉬 ~ 하는 사람이
분위기를 확 깨 놓는것 같다. 해서 아래쪽 사진에 설명을 덧 붙여 보기로 했다
 
전설의 주인공 박달이와 금봉이
 
전설의 내용을 따르면 박달이는 영남의 선비였는데 한양으로 과거시험을 보러 가던 도중
날이 저물자 이곳 박달재에서 하루를 유숙하게 되었다
 
그때 주막집에서 금봉이를 만나게 되었는데 그만 둘이 서로 눈이 맞았다고 하나...
어찌됐든 인적없는 깊은 산속 주막집에서 젊은 청춘남녀가 만났으니
순식간에 두 사람의 눈에선 스파크가 일어날 것은 지극히 당연한 일인 것이다
 
순식간에 서로 뜻이 통한 박달이와 금봉이는 장래를 약속하게 된다
그리고 금봉이는 한양으로 과거보러 떠나는 박달이의 허리춤에 도토리 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준다
그런데 박달이는 금봉이가 허리춤에 매달아준 도토리묵 값도 못하고
과거시험에서 그냥 낙방해 버렸다
 
거기까지는 좋았는데 시험에 낙방한것이 죄스러워 금봉이에게 돌아가지도 못하고 방황을 한것 같다
금봉이는 그때 한양 간 박달이가 변심해서 돌아오지 않는다고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결과는 금봉이가 너무 상심한 나머지 그만 스스로 죽음을 선택 했다
 
그리고 박달이도 금봉이가 죽은 후에 돌아와 금봉이를 부르며 울부짖자 금봉이의 환영이 나타났다
박달이는 금봉이의 환영을 따라가다 그만 고개마루 정상 벼랑에서 떨어져 죽고 만다
 
그러고 보면 우리나라 어느곳을 가든 전설은 비슷한 내용을 하고 있는것 같다
천안 삼거리에 오래전부터 내려오던 전설도 천등산 박달재의 전설과 비슷하다
 
영남선비 박달은 과거에 낙방하여 이곳에 돌아오지 못하다가 금봉이가 죽은후에 돌아왔고
천안 삼거리 주막집에선 능소와 앞날을 약속했던 호남선비 박현수가
과거에 급제하여 능소와 해후 했다
 
두 전설 다 스토리의 무대는 주막집이다
다만 다른것이 있다면 천등산 박달재 이야기는 새드앤드로 끝을 맺고
천안 삼거리의 능소와 박현수의 이야기는 해피엔드로 끝을 맺는다는거...
이것 하나만 다를뿐 무대 배경이나 장래를 약속하고 한양으로 과거보러 떠나는 내용은 똑 같다
 
어사가 되어 삼거리 주막으로 찾아온 박현수가 주막의 능소와 상봉하는 장면 - 천안 박물관 조형물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가던 전라도 선비 박현수는 절세 미인이었던 유능소를 천안 삼거리 주막에서 
만나게 되었고 능소와 담소를 나누던 중 서로 눈이 맞는다
 
눈이 맞았다고 해야 하나...서로 뜻이 통했다고 해야하나...
여튼 그들은 순간적으로 전율을 느끼며 그 자리서 서로 사랑을 고백했다고 한다
 
그러고는 다음날 박현수는 다시 꼭 찾아 오겠노란 약속을 천등산 박달이처럼 남긴체 과거 보러
한양으로 올라갔고 결국 과거에 급제하여 삼거리로 다시 찾아와 능소와 상봉 하는 장면이다
 
여기서 주시할 점은 영남선비 박달도 이등령(당시는 이등령이라 불렀다 함) 주막집에서
하루를 묵게 되었고 그날 밤 금봉이와 서로 뜻이 통해 순간적으로 사랑을 고백했다는 이야기다
 
그러고 보면 어느 고장, 어느 고을을 가나 남녀간의 애뜻한 전설이 있는곳은 스토리도 비슷하다
경상도 선비나 전라도 선비가 한양으로 과거를 보러 가던 중 날이 저물어 주막에서 하루를 묵게
되는 과정, 그리고 그 주막의 XX낭자와 서로 뜻이 통해 그 자리서 사랑을 고백하게 되는 장면....
 
 과거에 급제하여 다시 꼭 돌아 오겠다는 철떡 같은 약속을 남긴체 이별하는 장면까지는
천안 삼거리의 능소 이야기, 그리고 남원의 성춘향 이야기나 박달재의 금봉이 이야기가 똑 같다  
 
하지만 천안 삼거리의 박현수나 남원의 이몽룡은 과거에 급제하여 님과 해후 하였지만
이곳 박달재의 박달이는 금봉이가 허리춤에 매달아준 도토리묵 값도 못하고 그만
낙방거사가 되고 말았다
 
그리고 결국 박달이와 금봉이, 둘 다 슬픈 최후를 맞았다
그래서 천등산의 박달재는 울고 넘을 수 밖에 없는 고개가 되었던 것이다
 
박달이와 금봉이 상이 모셔져 있는 박달재 성황당 - 제천시 봉양읍
 
천등산, 지등산, 인등산, 이렇게 삼재가 서로 나란히 자리잡고 있는 박달재는 백두산, 태백산과 같이
하늘에 제를 올리는 신성한 곳이였다고 한다. 그래서 그런지 이곳에도 성황당이 하나 자리잡고 있었다
 
그곳은 다름 아닌 박달이와 금봉이의 상이 있는 성황당이었다
 
박달이와 금봉이의 상이 모셔져 있는 성황당
 
울고넘는 박달재, 2절을 들어보면 다음과 같은 가사가 나온다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떠난 님아 ~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 ~
그런데 박달이는 이 성황당에 꼭 다시 돌아오겠다고 빌고나 갔는지 모르겠다
 
박달이와 금봉이가 이별에 앞서 두 손을 서로 마주 잡고 아쉬워 하는 장면
 
금봉이가 죽은후에 돌아와 금봉이의 환영 만나고 있는 박달이  
 
박달이가 한양으로 과거 보러 갈때 금봉이가 도토리 묵을 싸서 허리춤에 매달아 주었다고 한다  
하지만 도토리묵 값도 못하고 과거에 낙방한 박달이가 죽은 금봉이의 환영을 만나고 있다
 
박달이가 금의환향 하기를 학수고대 하는 금봉이
 
과거에 낙방하고 돌아온 박달이가 허탈해 하는 장면
 
제천역 광장에 세워진 박달이와 금봉이 석상
 
박달재에 있는 박달이와 금봉이하고 이곳 제천역에 세워진 박달이와 금봉이는 표정부터가 다르다
달라도 너무 다르다. 아마 둘이 처음 만나 눈 길을 주고 받을때...그때의 표정을 상기하며 조각하지
않았나 싶다
 
박달재 정상에 세워진 박달이와 금봉이 동상
 
박달재 정상에 조성된 박달이와 금봉이 가묘
 
박달재 정상에 조성된 박달이와 금봉이 가묘
 
박달이와 금봉이 가묘에서 내려다 본 박달재 휴게소 - 제천시 봉양읍
 
이 박달재는 충주와 제천의 중간지점에 있는 고개로서
예전에는 제천에서 충주로 가는 유일한 길목이었다  
 
하지만 언제부터인가 터널이 개통되면서 이 박달재는 사람들의 기억에서 서서히 잊혀져 갔다  
터널이 개통된 뒤, 이곳은 없어도 불편한 사람 하나 없는 잊혀진 길이 되었다
 
그런데도 궂이 이 길을 선택해서 올라온 이유는 박재홍 선생의 "울고넘는 박달재" 를
콧노래로 흥얼흥얼 거리면서 넘어보고 싶었기 때문이었다
 
천둥산 박달재를 울고 넘는 우리 님아 ~
물항라 저고리가 궂은 비에 젖는구려 ~
왕거미 집을 짓는 고개마다 구비마다 ~
울~었소 소리~쳤소 이가슴이 터지도록 ~

부엉이 우는 산골 나를 두고 떠난 님아 ~
돌아올 기약이나 성황님께 빌고 가소 ~
도토리 묵을 싸서 허리춤에 달아주며 ~
한사코 우는구나 박달재의 금봉이야 ~
 
 박달재 터널이 개통되기 전인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트럭 운전수들은 이곳 박달재를 울고 넘어야 했었다
 
필자도 박달재 터널이 개통되기 전, 짐을 가득싣고 이곳 박달재를 넘을때 울고 넘은 적이 있었다
그것도 비 오는 날이나 눈이 오는날은 필히 울고 넘어야 했다. 시속 10~20Km로 달리면서...
 
울고넘는 박달재의 노랫말처럼 " 물항라 ~ 저고리가 ~ 궂은비에 젖는구려 ~ "
 
그때 트럭은 비만 오면 빗방울이 운전석으로 흘러 들어 오곤 했었다
그때 궂은 비에 젖은 옷소매를 훔치면서 이곳 박달재를 울고 넘었다
 
당시엔 2.5톤 타이탄 트럭을 몰고 다녔는데 운전 도중 툭하면 핸들이 빠지기도하고
비오는날 와이퍼가 작동이 안되는가 하면 엑세레다가 갑자기 없어지기도 했다
 
엑세레다가 없어지는 이유는 차 밑 바닥이 너무 낡아서 꺼져 버렸기 때문이다
그때 달아난 엑세레다 꼭찌를 밟고 이 박달재를 정말 울고 넘었다
 
하지만 요즘은 노래 가삿말처럼 박달재는 울고 넘을 사람은 하나도 없다 시속 80~90Km,
쫌 심한 사람들은 시속 120Km 속도로 터널만 통과하면 곧바로 제천이고 충주다
 
박달재 정상
 
이재 이 고개를 구비구비 돌아 내려가면 제천시로 들어가게 된다
 
박달재 옛 길이 끝나는 지점
 
제천에서 박달재 옛 길로 들어설땐 사진에 보이는 저 관문을 통과 해야 한다
 
고속도로 처럼 매끈하게 뚫린 천등산 박달재 자동차 전용도로
 

장사익 - 비내리는 고모령 | 음악을 들으려면 원본보기를 클릭해 주세요.

 

출처 : 비단장수 왕서방 이야기
글쓴이 : 나먹통아님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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