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 행

[스크랩] 청계산의 겨울 / 펌

마블마운틴 2009. 8. 4. 16:35

♣  청계산(淸溪山·618m)은 서울 서초구와 성남시 수정구, 의왕시, 과천시에 둘러싸인 수도권 남부의 명산이다.  서울 주변에서 숲과 계곡, 절,공원 등을 한꺼번에 만날 수 있고 남북으로 흐르는 능선을 중심으로 펼쳐진 산세가 수려하며 숲 또한 울창하고 계곡이 깊고 아늑하다.

 

풍수설에 청계산을 청룡산이라 하였고 관악산을 백호산이라 칭하여 풍수의 좌청룡 우백호를 이룬다 한다. 이 청계산은 용이 산허리를 뚫고 나와 승천했다 하여 청룡산이라는 설화도 있다. 또한 관악산은 진산鎭山이고 청계산은 청룡산靑龍山으로 옛날에는 비가 오려고 하면 두 산이 함께 울었다는 이야기도 전해 온다.

사방으로 굵고 기운찬 산줄기가 뻗어 있고 그 사이사이로 맑은 물이 흐르는 청계산은 목은 이색(李穡·1328~96) 등 절개 곧은 이들의 은둔처로도 이용됐다.


이수봉 남쪽에 있는 국사봉은 고려 말 이색(어떤 곳에서는 조윤)이 망한 고려를 생각하고 그리워했던 봉우리라 해서 붙여진 이름이라 한다. 여기 국사봉의 이름이 별다른 점은 전국에 많은 국사봉이 선비 사(士) 자를 쓰는데, 여기의 국사봉은 생각 사(思) 자를 쓴 것이다. 국사봉에는 봉화대가 있었다거나, 어느 선비가 나라님을 그리워한 유래를 가졌다거나, 또는 나라를 위한 기도터나 도당굿터가 있었다는 등 대부분 나라와 관계와 있는 사연들이 많다.


정상 봉우리인 망경대(望景臺)와 매봉(583m), 이수봉(貳壽峰·545m), 국사봉(國思峰·540m) 등 암팡진 봉우리들을 여럿 가진 청계산은 80년대 이후 수도권이 확대되면서 좋은 휴식처 역할을 해주고 있다.

양재인터체인지를 지나 경부고속도로로 접어들 때 오른쪽으로 보이는  청계산은 순한 육산이지만, 과천 서울대공원 정문 부근에서 바라보는  청계산 정상인 망경대 주위는 바위로 이루어져 있어 위압감마져 느낀다. 정상인 망경대는 정부시설이 있어 등산이 불가, 국사봉(538m)과 545m 봉을 연결 산행하고 있다.

 정상에 서면 북서쪽으로 펼쳐진 계곡 아래 과천시와 동물원, 식물원이 있는 서울대공원, 각종 놀이기구가 있는 서울랜드, 국립현대미술관, 과천 경마장이 한눈에 내려다 보인다.


 

12월 8일 토요일.

오랫만에 만나는 옛친구와 같이 산에 오르기로 했다.

한 칠개월만일까.

 

양재역 7번 출구에서 버스를 타고 옛골로 갔다

 

옛골을 왔더니 눈이 쌓여 있었다.

지지난 밤에 눈이 꽤 많이 왔나 보다.

옛골은 하얀 설경을 자랑하면서 있었다.

 

하늘은 푸르른데 바람이 꽤 차기만 하다.

 

눈이 안 온 청계산은 그냥 을씨년스런 풍경인데 오늘은 새하얀 옷을 입혀 놓은듯

맘껏 한겨울의 자태를 뽐내고 있었다.   

 

 

 

 

 

 

 

 

시설을 우회해서 가니 이윽고 이수봉 정상석이 보인다.


이수봉(貳壽峰)에는 예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전설이있다.
이수봉(546m) 정상석의 비명에는 짤막한 글로 이수봉의 전설을 소개하고 있다.

-조선 연산군 때의 유학자인 정여창(鄭汝昌) 선생이 스승 김종직과 벗 김굉필이 연루된 무오사화의

변고를 예견하고, 한 때 이 산에 은거하며 생명의 위기를 두 번이나 넘겼다고 하여

후학인 정구 선생이 이수봉이라 명명하였다.


그러니까 이 산으로 인연하여 두(貳) 번이나, 목숨(壽)을 건졌다는 뜻인데, 무오사화(戊午士禍)는

어떤 사화(士禍)이며 정여창(鄭汝昌)은 어떤 분이신가?
-조선 세조가 단종을 죽이고 찬위(簒位)할 때 이를 도와 막강한 세력을 잡은 파에 정인지,

신숙주, 최항, 권람, 강희맹 등 훈구파(勳舊派)가 있었다. 
 

이에 맞서던 파(派)로 전원에 묻혀 유학을 공부하면서 도학적인 유교정치를 실현하고자 하던

사림파(士林派)가 있었는데 이들은 고려 유신 길재의 제자들로 영남 유학의 사종(師宗) 김종직과

김굉필, 정여창, 조위, 김일손, 유호인 등이었다. 
 

이 두 파들은 사이가 좋지 않아서 사림파는 훈구파를 욕심 많은 소인배(小人輩)라 하였고,

훈구파는 사림파를 야생귀족(野生貴族)이라 하며 서로 앙앙불락하였다.

조선 연산군 4년에 훈구파 유자광이 성종실록에 실린 김종직이 쓴 사초의 <弔義帝文>이라는 글을

트집 잡아 연산군에게 고하였다. 이 글이 세조가 단종으로부터 왕위를 빼앗은 일을 은근히 비방한 것이라고.

연산군은 평시에 선왕인 성종의 특별한 사랑을 받던 사림파를 좋지 않게 보던 참이라,

이는 김종직( 金宗直)이 선동한 것이라는 훈구파의 말에 격분하여 김종직을 부관참시(剖棺斬屍)하고,

이에 연루되어 그의 문하 정여창, 김굉필(金宏弼)과 함께 유배 후 사사(賜死)하였다.

이것이 4대 사화의 처음인 무오사화(戊午士禍)였다.


이런 사화로 남편이 희생당하자 화가나서 그런 공부, 그런 책은 필요없다고 남편이 지은 책을 모두 불태워

버렸다는 일화는 정여창 부인의 이야기였다.

정여창도 이곳에 은거하여 있을 때 이 아름다운 설경을 보았을까?

하기야 목숨이 위태로우니 어찌 아름다움을 만끽할 수 있으랴......

그저 초조하고 불안하여 춥기만하였던 것이 아닐까.

 

그래도 이곳에서 은거하여 두번씩이나 목숨을 건졌으니 은인같은 곳이었으리라.

 

 

 

 

이수봉에서 조금더 가니 청계사로 갈라지는 갈림길이에 안내판이  나온다.

안내판에는 송산松山 조견趙絹과 망경대望京臺의 전설이 적혀있다.

송산은 태조 이성계의 친구로써 고려 말의 충신이었다.

나라 잃음을 놓고 청계산 제1봉에 올라 죽지 못함을 한탄하며, 개경만 바라보았다 해서 망경대(望京臺)라 부르고

제2봉에 올라가 나라를 생각하였다 하여 국사봉國思峰으로 불렀다 전해온다.

 

이곳을 몇 번씩이나 지나면서도 이 안내판을 읽지 않았는데 오늘은 천천히 뜻을 음미하며 읽어 보았다.

망국의 한을 이곳에서 달래던 송산의 쓰라린 마음을 느끼면서.... 

 

그런데 이 안내판은 절고개 능선 표지판이 있는 갈림길에 있었다.

망경대는 한참을 더 가야 있는데....

 

 

 

  

 

 


 

망경대(望京臺)의 옛 이름은, 하늘 아래 만(萬) 가지의 경승을 감상할 만한 터라고 해서 만경대(萬景臺)라고 하였다.
그러다가 고려가 망한 뒤 조윤(趙胤), (나중에 조견이라고 개명)이 청계산 정상에 올라 송도를 바라보며 세월의

허망함을 달랬다는데서 망경대(望京臺)라 하였다는 것이다.


이런 이야기는 이수봉 건너편에 있는 국사봉(國思峰, 538m)에도 연관된다.
-나라가 망하자 목은 이색(李穡) 같은 우국지사나 고려 유신들이 청계산에 은거하여 살 때 이 봉에 올라가서

옛 나라('國)를, 생각(思)'하였다 해서 국사봉(國思峰)이라 했다는 것이다.

백설이 잦아진 골에 구름이 머흐레라
반가운 매화는 어느 곳에 피었는고
석양에 홀로 서 있어 갈 곳 몰라 하노라.


  목은 이색이 지은 이 시조의 상징 의미는 다음과 같다.
'白雪': 고려 유신들/ 구름: 조선에 충성하던 신흥 세력/ 매화: 고려 충신들/ 석양: 고려 멸망

 

 

 

 

 정여창이 무오사화를 피하여 이 산에 숨어들었을 때 스승인 김종직이 부관참시(剖棺斬屍) 당했다는

기막힌 소식을 듣고 피(血)눈물을 흘리면서 울면서(泣) 넘었다는 혈읍재(490m, 血泣재).

 

부관참시(剖棺斬屍) 란 큰 죄를 지은 사람이 죽었을 때 관을 쪼개어 송장의 목을 자르는 극형 중에 극형을 말한다.

 

 

  

 

 

 

 

 -내 아무것도 가진 것 없건마는
머리 위에 항상 푸른 하늘 우러렀으매
이렇듯 마음 행복 하노라

 

*.충혼비 앞에서

  그 매바위와 매봉 사이의 하산 길에 '청계산 충혼비'가 있어 발걸음을 멈추게 한다.
-'1982년 6월 1일 군작전 중 비행기 추락으로 순직한 53인 용사를 추모하기 위해 건립한 비입니다.' →50m.
  이곳은 저기 보이는 비행장과 무관하지 않은 것 같다. 여기는 우리의 영공(領空) 수호하다가 산화한

장소로 순직한 용사는 조종사인 공군 대령, 소령을 위시해서 공군이 4명, 육군 2명의 대위를 포함해서

49명의 육군인데 그 중에 일등병만도 44명이니, 살아있으면 지금 40 전의 나이라 얼마나 통탄한 일이던가.

그 슬픔을 비명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忠魂의 숨소리

그대들의 흘린 뜨거운 피와 忠魂의 얼로
祖國은 살아 크게 숨쉬나니
그대들의 靈魂은 祖國의 山河에서
永遠히 살아 꽃 피리라.
그대들은 祖國을 사랑하고
또한 祖國은 그대들을 사랑하노니
거룩한 英靈들이여
祖國의 품속에 고이 잠드소서.

-1985년 6월 1일 오수 2시 49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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구름님.뵙게되어 반가웠습니다 그리구 감사하구요.

얼마만이였습니까..

사람의정이 참 ... 한세상살면서 좋은분들과의교류는 내 영혼이 부자임을느끼게합니다.

 

 기록은 구름님 블로그에서..

 

 

Danielle Licari - Concerto Pour Une Voix (목소리를 위한 협주곡) 

 

 

 

출처 : 청계산의 겨울 / 펌
글쓴이 : 시아오제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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